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정국 전반에 드리운 그림자는 짙고도 길다.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무게, 비극적 죽음이 대중에게 던진 큰 충격파, 정치 보복으로 비쳐지는 묘한 상황 등이 조합해 만들어낸 그림자다. 정치권이 이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사안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현 정권에 큰 부담이다. 세인들의 눈에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현 정권의 정치보복의 결과로 비쳐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대중들의 감성은 상당히 자극을 받은 상태다. 그 정도가 2004년 탄핵 사태를 뛰어넘는다"고 단언했다. 격앙된 대중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하기라도 하면 감당 못할 위기가 현 정권을 찾아 올 수 있다.
물론 탄핵 등의 사안과는 다른 측면이 많다. 정치적 구심이 마땅찮고, '죽음'의 정치적 이용도 한국 정서에서 터부시된다. 때문에 정치적 후폭풍으로까지 현실화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다.
4ㆍ29재보선 참패로 갈길 먼 한나라당으로서도 이번 사태는 큰 짐 하나를 더 짊어진 격이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당분간 최대한 조심하고 엎드려 정국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야권은 검찰 수사로 느껴온 도덕적 부담을 일거에 털고 공세로 전환, 정국 반전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은 그간 검찰이 구 여권을 겨냥해 편파 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해 온 만큼 이 부분에 공세의 포커스를 맞출 것 같다. 당장 특검 실시와 국정조사 등이 쟁점화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을 향한 정치권의 반격이 시작되는 것이다. 검찰이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도 덩달아 정국의 변수가 될 것이다.
물론 야당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되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이번 사안이 되려 보수층 결집을 자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국 긴장의 수위는 노 대통령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29일께 최고점을 향해 치달을 것 같다. 이는 여야 간 미디어법 충돌이 예고된 6월 국회 시작 시점과 맞물린다. 한나라당으로선 냉각기가 필요하다.
바로 미디어 관련 법 충돌 정국으로 직행하는 것은 자살행위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24일 "6월 국회 일정 순연"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은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국은 당분간 다양한 변수와 혼돈 속에 내맡겨 질 것 같다. 물론 "충격파가 워낙 큰 데다 변수도 많아 너도 나도 몸을 사리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의외로 정국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이들도 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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