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 중구 신당동 청구초등학교에서 자그마한 행사가 열린다. 경동교회와 정토회, 문정동 성당이 함께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첫 '나비(나눔과 비움) 바자회'이다. 친환경 상품과 신도들이 기증한 용품을 전시 판매하고, 먹거리 장터가 열린다. 여기에 가족이 함께 즐기는 사물놀이와 아카펠라 공연이 곁들여지고 헌혈과 장기기증 운동도 펼친다. 작지만 이렇게 개신교, 천주교, 불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북한 돕기에 뜻을 함께 해온 박종화 목사, 법륜 스님, 김홍진 신부의 "나눔에 종교의 벽은 없다"는 의견 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익금이라고 해야 2,000만원 남짓 예상하고 있다. 세 사람은 그것을 어디에 쓸까 고민했다. 많지 않기에 더욱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중구청과 협의해 '가정의 달'이기도 하니 중구에 사는 50여 조손 가정에게 주기로 결정했다. 경제위기와 이혼증가에 따른 가족해체로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그 못지않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도 급증했다. 줄잡아 6만 가구에 이른다. 소년소녀 가장의 절반, 열악한 학습조건과 교육소외 계층 청소년의 3분의 1이 조손 가정이라는 조사도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손 가정은 정부의 도움에서 멀어져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에서는 사실상 행방불명이나 다름 없는데도 부양할 아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경제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족간의 역할과 기능 상실이다. 조손 가정은 아동양육과 노인부양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늙고 돈이 없어 손자 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조손 가정에 교육소외 청소년이 유난히 많은 것은 당연하다. 반면 아이들은 양육혜택은 고사하고 소년소녀 가장 통계가 말해주듯 오히려 노인 부양까지 떠맡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사소한 것 같지만 영화 <집으로> 의 치킨 해프닝처럼 문화, 음식 차이에 따른 갈등도 무시할 수 없다. 조손 가정 중에는 영화에서처럼 도시에서 살던 손자가 어느날 갑자기 농촌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살게 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아동보호 시설을 다녀온 사람의 얘기다. 떡을 갖고 갔더니 원장이 "미안하지만 다음부터는 떡 대신 피자나 햄버거를 가져오면 좋겠다"고 했단다. 아이들이 떡을 먹지 않아 할 수 없이 그것을 모두 썰어 떡볶이를 만드느라 고생했다는 것이다.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욕할 수도 없다. 집으로>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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