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분열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세력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정치권에서도 격한 대립을 예고하는 언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현 상황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사회 전체가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는 걱정어린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거 이튿날인 24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봉하마을을 찾았지만 노사모 회원들과 주민들의 격렬한 제지로 곤욕을 치르고 조문을 하지 못했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도 마을 어귀에서 발길을 돌렸다. 전날 한승수 총리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참여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인 무소속 정동영 의원도 제지당했다가 다음날 조문을 해야 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보내온 조화는 짓밟혔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화는 불태워졌다. 일부 보수언론 기자들은 취재가 거의 불가능했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노사모 회원들과 봉하마을 주민들의 감정이 얼마나 격해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반대의 상황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경찰은 시민들이 광화문 인근에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행사를 가지려 하자 "불법집회로 변질될 수 있다"는 이유로 강제철거했다가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은 분향소 설치를 허용한 뒤에도 주변을 겹겹이 에워쌌고, 서울시청 앞 광장 등에선 아예 시민들이 모이는 것까지 막았다. 이러자 민주당이 경찰의 행태를 강력 비난하면서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현 상황에서 정치인 팬클럽에게 감정을 추스리라고 하는 건 무리일 수 있지만 노사모가 조문정치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경건한 마음을 갖는 것 이외에 다른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려 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비극이 사회 분열상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갈 것인지 여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였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자살은 엄밀히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 대신 검찰과 같은 공안기관을 통치의 주된 수단으로 활용한 데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이 대통령이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원순 변호사도 "현 정부가 전 정부를 지나치게 옥죄었던 게 이번 비극의 한 배경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며 "정치적 반대파에 대해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율 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갖는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치명타를 입게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분향소 설치를 막은 건 여전히 국민의 감성을 보듬기 보다 통치의 효율성만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경우에 따라선 지난해 쇠고기 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시민사회가 전면 충돌하는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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