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 생기기 전, 어머니날이 있었던 때 이야기입니다. 그 날을 하루 앞두고 저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내일은 어머니날이다. 어머니께서 우리를 위해 밥도 해주시고 빨래도 해주시면서 온갖 고생을 하시는데 내일 하루 만이라도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면서 감사하도록 하자!"
정직하게 말씀드리면 이러한 발언이 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날이기 때문에 상투적으로 그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것도 못해줄 거라면 무엇 하러 우리를 낳았어요?"
뒤통수를 한 대 맞는 것 같았습니다. 당연히 당돌하고 버릇없는 질문이라고 야단을 쳐야 할 터인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옳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못할 바에야 낳지를 말아야지'하는 주장은 정당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굳이 감사해야 할 까닭도 없지 않으냐는 뜻을 담은 그 질문에 조금도 이견을 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래도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은데...내가 오늘 집에 가서 더 생각해보고 대답 해줄게..."
제가 다시 그 학생에게 뭐라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도대체 감사란 어떤 것인가'하는 물음을 가지고 씨름을 했던 기억은 분명하게 떠오릅니다. 저는 '감사란 내가 바라는 어떤 조건이 충족된 데 대한 반응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승인하고 수용하는 태도'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 학생은 제게 감사가 무언지를 깊이 되새기게 해준 제 '선생님'입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과 추상적인 명사, 이를테면 사랑 미움 꿈 시간 등을 색깔로 묘사해보는 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만약 어떤 아이가 사랑을 빨강이라고 하면, "왜 그럴까" 하고 이야기를 펼쳐 가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떤 아이는 사랑의 색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따듯한 봄날, 양지쪽에서 삐약거리는 병아리의 색"이라고. 또 다른 아이는 이런 묘사도 했습니다. "삶의 색, 생선대가리 먹다 걸린 쥐틀 안에서 허덕이는 생쥐의 색." 어떤 녀석은 이런 글도 썼습니다. "넘어져도 넘어져도 빨딱빨딱 일어나는 파란 오뚝이의 색, 친구의 색.'
이 놀이 이후 저는 '선생 노릇'을 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경험을 다듬으면 두 가지로 모아집니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장(場)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차지한 공간이 작을수록 배우는 사람의 공간은 커진다는 사실이 그 하나이고, 그 양쪽은 '학생'과 '선생'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그 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온통 그 공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공간은 가르치는 사람의 권력이 행사되는 장이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권력은 폭력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심지어 '너희가 창조적으로 사고하고 활동하고 학습하도록 나는 뒤로 물러나 너희들을 도와주겠다'는 가르치는 사람의 선의조차 그 공간을 아예 통제해버리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때로는 가르치는 사람의 의기소침함이나 긍지 없음이 그 공간을 뒤덮습니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사람의 자리는 한껏 작아야 합니다.
또한 그 곳에는 학생과 선생만 있을 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둘은 각기 사물이 됩니다. 서로 도구적 가치로만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좋은 관계라는 신념이 현실화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끼어 들면 그 좋은 평형이 깨진다는 두려움조차 현실화되어 있습니다. 가까스로 '사람'이 끼어 들어도 가르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을 가능성을 지닌 인격이 아니라 덜 익은 개체로만 여깁니다.
하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아직 사람 아닌 사람을 점차 사람이게 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사람인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해준 그 때 그 아이들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선생님들입니다.
대학에서의 경험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해, 종교현상학을 강의 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자주 종교라는 어휘를 발언했습니다. 종교는, 종교란, 왜냐하면 종교가, 그런데도 종교는, 결국 종교는...이런 투였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절반을 넘어설 때였습니다. 한 친구가 갑자기 제 발언을 막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종교가 무업니까"
순간 저는 분노와 배신감과 허탈함, 그리고 거의 몸의 탈진마저 느꼈습니다. 이제까지 무엇을 들었느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었는데, 그의 표정은 저를 그렇게 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기대가 망가진 낙담, 그래서 생긴 냉소, 속지 않겠다는 결연함, 그리고 어쩌면 제게 대한 연민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표정을 그의 얼굴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무릇 개념은 소통을 위해 경험을 추상화하여 낳은 언어입니다. 그러나 개념을 통한 설명은 역설적으로 경험을 재단하면서 때론 소통을 더 어렵게 합니다. 개념은 다만 개념들이 엮는 논리 안에서만 소통을 이룰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개념도 자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학문적 담론의 한계입니다.
학문은 이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겸허한 지적 발언입니다. 따라서 학문적인 주장은 어떤 것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데서부터 학문은 스스로 자신을 배신하면서 독단을 휘두릅니다. 학문이 자기와 세상을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한없는 빚을 졌습니다. 그 친구의 물음이 없었다면 제 학문은 참 오만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은 먼데 있지 않습니다.
지난 주, 제 강의에서 어떤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늘 행복하거든요. 날이 좋으면 날이 좋아서 행복하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행복하고...그런데 너무 너무 행복해서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왜죠?" 해맑고 진지하게 제기하는 그의 문제의식은 제게 또 다른 과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숙제처럼.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을 찾아 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많은 '선생님'들이 제 주변에 있었습니다. 마음 같으면 수백송이 꽃을 들고 그 '선생님'들을 다 찾아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종교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