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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의문사 18년만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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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의문사 18년만의 화해

입력
2009.05.19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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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서울 필동의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대회의실. 18년 전 군 복무 중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남현진 이병의 유족과 가해 부대원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유족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당시 선임병이었던 A(39)씨가 어렵게 용서를 구하는 말을 꺼냈다. 순간 굳어있던 유족들 표정이 가볍게 떨렸다. 18년 만에 사과를 받은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남 이병의 형 준진(45)씨가 입을 열었다. "용기 있는 고백이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한 순간에 용서하긴 힘들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군 의문사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이 만나 잘못을 빌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진 일이 18일 뒤늦게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남 이병의 소속 부대 중대장과 소대장도 참석해 "잘 보살피지 못해 죄송하다"며 유족에게 머리를 숙였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군 의문사를 포함해 84건의 의문사 사건을 통틀어 가해자와 피해 유족이 화해의 만남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준진씨 가족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1991년 2월. 대학 2년을 마치고 석 달 전 군에 입대한 남 이병이 갑자기 숨졌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군 당국이 밝힌 사망 원인은 '군생활 부적응으로 인한 자살'. 유족들은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두 차례 조사했으나 구체적 진술과 증거가 없어 '진상규명 불능' 처리됐다.

하지만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고 2006년 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렸다. 진실화해위는 1년간 조사를 벌인 결과, 남 이병이 입대 전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선임병으로부터 연일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이를 벗어나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당시 부대 지휘관들이 부대원들에게 가혹행위 사실을 함구하도록 교육하고 고인의 명예를 실추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 같은 진실은 선임병 A씨의 '양심 고백'으로 밝혀졌다. 의문사위의 두 차례 조사에서 끝내 침묵했던 A씨는 지난해 9월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남 이병을 때리고 가혹행위를 한 사실을 고백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처음에는 이전 조사 때처럼 버티던 A씨가 조사관들의 추궁과 더불어 조사 목적이 처벌이 아닌 화해와 용서에 있다는 말에 진실을 털어 놓았다"고 전했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유족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말했고, 진실화해위의 주선으로 만남이 성사됐다. A씨와 중대장 등 부대 관계자 4명은 이날 만남에 앞서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남 이병 묘소를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18년간 통한의 세월을 보낸 유족들이 가해자들과 얼굴을 맞대기란 쉽지 않았다. 준진씨는 "가해자들이 사과하고 싶다는데 받아 주겠냐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일주일 넘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준진씨는 만남에서 "가해자들도 국가에 의한 만들어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어렵게 사과를 받아들였다.

만남 내내 입을 굳게 닫았던 남 이병의 부친 남효천(65)씨는 마지막으로 A씨를 비롯한 부대원들과 일일이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준진씨는 "당시 부대원들의 진솔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도 "국가 차원의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동생도 비로소 편히 잠들고 가족들도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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