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별-진은영
늙은 여자들이 회색 두건의 성모처럼 달려와서
언덕 위 쓰러지는 집을 품 안에 눕힌다
라일락, 네가 달콤하고 하얀 외투로 달려와
바람에 무너져 가는 저녁 담을 둘러싼다
면식 있는 소매치기가 다가와
그의 슬픔을 내 가방과 바꿔치기해 간다, 번번이
죽은 사람이 걸어 다닌다 꽃이 진다 바람 분다 여름이
파란 얼음처럼 마음 속으로 미끄러진다
하늘의 물방울이 빛난다
내가 사랑했던 이가 밤새 마셨던
굳어 가는 피의 거울 속에서
사람들이 제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제 속눈썹의 흰 별자리가 떨리던 것을
● 오월의 어떤 저녁이다. 여전한가. 언덕 위의 집들은 절반쯤 철거되었고 절반쯤 귀신의 집이 되었다. 나는 바람에 무너져가는 담장을 따라 걷고 있었다. 이때 ‘오월의 별’이 ‘그의 슬픔을 내 가방과 바꿔치기해 간다.’ 오월에 죽은 자들이 내게 그의 슬픔을 별빛으로 알려온 것이다. ‘하늘의 물방울이 빛난다.’ 이곳 이때는 정녕 그곳 광주의 그때 5월로부터 아주 ‘먼 지방’, 별천지 별시간이 다 이루었는가.
이제 나의 피는 슬픔에도 별빛에도 출렁이지 않는가. 굳어 가는 피를 거울처럼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거기서 어떤 자화상을 만나게 될까. 어제 우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던 것을 기억해냈다면, 오늘 우리의 속눈썹은 어떤 그늘을 드리울까. 우리는 왜 찡그리고 있는가.
김행숙(시인ㆍ강남대 국문과 교수)
● 진은영 1970년 생,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등. 우리는>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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