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23일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 전역과 충청 5곳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내용의 강력한 주택가격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400조원의 부동자금이 유령처럼 떠돌면서 무차별적으로 부동산시장을 공략할 때였다. 강남 재개발아파트의 대표주자인 대치동 E아파트 시세는 113㎡(34평) 기준 6억6,000만~6억9,000만원이었다. 2000년 5월에 2억9,000만원 수준이었으니 3년 만에 이미 2.4배가량 오른 상황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800조원의 부동자금이 떠돌면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하이닉스 증자공모에 무려 26조원이 몰려들고, 인천지역 아파트청약이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재 E아파트는 113㎡ 기준 11억~11억5,000만원이다.
유동자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6년 만에 무려 2배가 됐다. 경기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확실하다 못해 아주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E아파트는 당시보다 60%이상, 2000년 5월 기준으로는 3.8배가 올랐다.
현재 부동산 규제는 사실상 완전히 무장 해제된 상황이고, 시중에 돈이 넘쳐 나면서 과잉유동성 논쟁이 불붙고 있다. 돈이 제 갈 곳으로 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돈이라는 것은 풀어도 문제고 졸라도 문제다. 특히나 지금처럼 경제가 불확실한 시기에 "돈을 푸는 것은 쉬워도 묶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얘기다.
하지만 이 많은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넘어가서 자산버블을 일으키는 것은 또 다른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다. 자산버블이 터져 버린 미국은 현재 전체 주택 보유자의 5분의 1이 언더워터(underwaterㆍ보유 주택 가치가 부채를 밑도는 깡통주택) 상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시종일관 규제를 해제하는 쪽이다. 각종 세제를 풀다 못해 이제는 수도권의 그린벨트마저 풀어헤치고 있다. 건설 경기를 살려 보겠다는 충심은 이해하나, 모든 안전핀을 뽑아 버리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토해양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면 더욱 걱정스럽다. 그는 강남 집값이 계속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건설은 고용을 쉽게 창출할 수 있는 분야라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강남 집값이 먼저 올라야 풍선효과를 통해 집값이 상승하고 경기가 활성화된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경기 부양을 위해서 집값은 끊임없이 올라야 하고, 그 결과 중ㆍ하위계층은 늘 비싼 집에서 살면서 빚에 시달려야 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최근 한 건설사 CEO로부터 들은 얘기다. "노무현 정부시절에 부동산이 최대 호황이었습니다. 노 정부가 정권 초기부터 부동산을 잡으려 했으나 오히려 폭등을 했습니다. 덕분에 일부 건설사들은 아파트 한 채당 1억원 가량을 남겼습니다. 건설사들은 사업장을 더욱 늘렸고, 놀고 있던 건설업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부동산 바람이 불면서 지방도 난리였지요. 결국 과잉공급에 경제 위기가 겹치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미분양사태가 온 거죠."
800조원의 부동자금이 어디로 튈 것인가. 정부가 돈의 물꼬를 제대로 트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면서도 부동산으로 불을 지피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 듯하다. 역풍이 걱정스럽다.
조재우 경제부 차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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