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신용정보회사가 20~40대 맞벌이 및 외벌이 부부 5,000여명을 대상으로 소득총자산을 조사해봤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당연히 맞벌이 가정의 연 평균 소득은 외벌이 가정에 비해 2배 정도 많았다. 하지만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은 그렇지 않았다. 자산 5~10억원대와 10억원 이상인 맞벌이 가정이 각각 전체의 10.3%, 3.3%였는데, 외벌이 가정도 그 비중이 각각 9.5%, 3%로 큰 차이가 없었다. 많이 버는 만큼 많이 쓸 것이고 육아 등 과외지출도 클 것이니 그렇지 않겠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담 스미스 이래 근대경제학이 전제하고 가정해온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세계에서는 '1+1=2'라는 등식이 통용되는 것이 맞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기심에 따라 이익과 불이익을 계산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찾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정보부족과 천재지변 등 외부적 충격과 왜곡에 의해 일시적으로 균형을 벗어날 수도 있으나, 인간은 대세적ㆍ 총체적으로는 합리적 결정을 내린다는 전제는 주류 경제학의 굳건한 신앙이다. 과연 그럴까. 일관되게 합리성을 이탈하는 인간 행태를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다.
■행동경제학에서 보면 앞에서 거론한 맞벌이 가정은 먼 미래를 판단할 때와 가까운 미래를 판단할 때의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비합리 사례를 보여준다. 이 가정들이 정말 합리적이라면 빨리 한 푼이라도 더 모아 맞벌이의 고단함을 덜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맞벌이라는 사회적 시선과 당장의 씀씀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소비와 자산축적 사이의 최적점
포착에 실패하는 게 우리가 더 흔히 보는 인간사다.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더 높은 행복감과 성취를 맛볼 것이라는 주류경제학의 토대가 크게 위협받는 이유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다소 진정되는 국면을 맞으면서 자본주의의 미래를 얘기하는 담론들이 국내외에서 더욱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논의는 자본주의의 자기 치유력이나 시장의 효율성을 재차 강조하는 것으로 종종 귀결된다. 체제나 기능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경제적 인간들이 신중함과 절제를 망각한 채 탐욕과 방종으로 자기 무덤을 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규제라거나 비합리적 경제행위의 법칙적 이해라는, 일견 모순된 처방이 제시된다. '경제 공황' 과 함께 '경제학 공황'이 닥쳐온 셈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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