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이 늘씬한 허리를 굽혀 바람과 맞서는 건 견디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슬하게 우는 푸른 음색은 단 한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물살의 거센 움직임을 닮았다
어깨를 낮춘 사람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거리 한켠 낮게 출렁이는 바다
자동차 불빛이 빗금으로 힘을 받는 대숲의 허리를 타고
투명한 빙어 떼처럼 날아오른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빗방울에 용해되어 천지에 난사된다
생의 모든 순간을 단번에 탄주하는 바람
대숲의 휘어짐에 따라 내 몸은
그 어떤 만선의 기쁨보다 벅차게 도로 위를 떠다닌다
온몸을 떼미는 힘에 의해
스스로에게서 빠져 나오는 자유를 얻는 건
원시적부터 몸이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본능이다
대숲이 허리를 세우고
하늘이 바다 아래로 흘러 지상의 소리를 바꾼다
처음으로 화답하는 당신의 몸엔 초록 비늘이 단단하다
● 한 종(種)은 단 한 차례만 멸(滅)한다. 이 시의 제목인 <단 한 차례의 멸종> 은 비장하다. 비장한 마음으로 더듬더듬 시를 읽다보니 이 시는 멸종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멸종함으로써 획득되는 거대한 자유를 노래한다. 단>
도시의 한 구석에서 시인은 대나무숲을 본 것일까. 대나무는 땅 속 줄기에서 뿌리와 순이 나와서 번식한다. 꽃은 단 한 번만 피며 꽃이 피고 난 뒤 대나무들은 기력이 다해 죽는다고 한다. 꽃이 피고 난 뒤 열매를 맺는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꽃이 피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이 장엄한 나무.
아마도 시인은 이 대나무의 죽음을 상기한 것 같다. 그리고 집단멸종하는 한 숲의 운명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본 것 같다. "원시 적부터 몸이 기억하는 유일한 본능"은 "스스로에게서 빠져나오는 자유를 얻는" 것이라고 시인이 말할 때, 그 시를 읽는 독자도 정말, 정말로 존재를 쇄신하고 싶은 느낌을 받는다. "소슬하게 우는 푸른 음색"의 존재로 말이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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