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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루고대통령, 노무현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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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루고대통령, 노무현전대통령

입력
2009.05.1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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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세계의 관심을 모으며 파라과이 대통령에 취임한 페르난도 루고가 지금 곤경에 처해있다. 야권과의 갈등, 정책적 과오, 사회적 대립 때문이 아니라 여성 문제 때문이다. 가톨릭 사제 출신인 그가 여러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루고 대통령의 아이를 낳았다는 여성이 벌써 세명이나 등장했다. 한명은 루고 대통령이 자신의 아이라고 이미 인정을 했다.

그는 중도좌파노선을 표방하면서 당선됐다. 남미 최빈국의 하나인 파라과이의 경제를 살리고 농업을 개혁해 농민, 빈곤층, 원주민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공약 못지않게 강조한 것이 바로 윤리, 도덕성, 투명성이었고 그것들이 당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아이를 낳았다는 여성이 나오면서 그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가톨릭은 사목활동에 전념하라는 이유로 사제에게 금욕생활을 요구하고 결혼도 못하게 한다. 루고 대통령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도 지킨 것처럼 위장했다. 그를 조롱거리로 여기는 동영상과, 그의 선거구호를 패러디한 노래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으니 체면도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이것은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그를 믿고 그에게 표를 준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다. 실제로 많은 파라과이 국민이 극도로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지도자가 펴는 정책에도 반응하지만, 그의 도덕성에도 그 못지않은 반응을 보인다. 한 파라과이인은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에게는 그저 신부가 아이를 낳은 스캔들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가 마지막 희망이었고 그가 진정 과거와 단절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대통령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으니 그가 추구한 정치 노선이 제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남미의 여느 나라가 그렇듯 파라과이 역시 할 일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여러 세력이 갈등할 소지가 많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권위 잃은 대통령이 그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이런 루고 대통령을 보면서 한국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린다. 물론 한 사람은 현직, 또 한 사람은 전직이니 신분에서 차이가 크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역시 루고 대통령 만큼이나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했다. 정치 개혁, 사회 변화의 열망을 한 몸에 받고 대통령이 됐다는 점도 비슷하다.

아직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고,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는 전임 대통령이 후임 정권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지만 그의 도덕성을 믿었던 사람들에게 지금은 실망과 좌절과 안타까움의 시간이다. 자식의 주택구입비와 생활비로 쓰기 위해 돈을 받았다니,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더 실망스럽다. 법적 정당성을 떠나, 퇴임 대통령으로서 여러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받았다면 도리어 조금의 이해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과, 한국의 많은 학자들은 그를 진보 정치인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 정치인과 보수 언론의 공격 때문이든 아니든 그는 많은 국민에게 진보 정치인으로 돼 있다.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한국의 진보가, 노 전 대통령의 처신 때문에 더욱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앞으로는 도덕성을 말하면서도 뒤로는 제 이득을 챙긴다는 지적이 나올 것이다. 자신을 약간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은 답답한 시간이다

박광희 국제부 부장직대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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