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지음ㆍ안진환 옮김/세종서적 발행ㆍ240쪽ㆍ1만4,000원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1999년에 낸 <불황경제학> 을 다시 썼다. 10년 전 아시아 경제위기를 분석하기 위해 썼던 초판의 내용에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세계 금융위기의 상황을 덧붙인 책이다. 불황경제학>
초판에서 저자는 1930년대 대공황과 흡사한 위기가 1990년대 후반 아시아에서 재발한 것을 목격하며 이렇게 썼다. "현대의학에 의해 박멸된 줄 알았던 병원균이 기존의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형태로 재출현한 것과 같다." 그리고 이번에 낸 개정판 서문에는 이렇게 썼다. "전염병이 이제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는 현재 진행 중인 글로벌 금융위기의 리허설이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황전도사' 혹은 '우울한 경제학자'라는 별명답게 저자는 이 책에서도 세계 경제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쏟아낸다. 최근 각국의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보이고 투자 심리도 살아나고 있지만 크루그먼은 "지금의 반짝 회복은 이 병원균이 잠복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단언한다.
또 불황이 경제의 근본적인 강약과는 관계 없이 튼튼한 경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임을 논증한다. 책에는 4월 9일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세상은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까지 말한 저자가 생각하는 세계 경제위기의 원인과 진행, 그리고 탈출 방향이 담겨 있다.
새롭게 추가된 내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그림자 금융'을 다룬 8장이다. 저자는 실물경제와 괴리된 채 기형적 성장을 거듭한 파생금융시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일반적 시각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리고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등 금융거품을 부추긴 인물들을 강도높게 비판한다.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 확장돼 전통적인 은행과 비등하게 됐다면 정치인과 관리들은 대공황의 원인이 된 금융 취약성이 다시 생겨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했다… (미국) 행정부는 여러 연방기관을 동원해 서브프라임 대출을 감시하려는 주정부의 노력을 막았다.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묵살되거나 간과되었다."(204쪽)
저자는 불황이 단기간에 극복되거나 대공황으로 치닫지 않고 일상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리고 불황을 무조건 금기시하지 말고 체제 내에서 다루는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의 '불황의 경제학'은 경기부양보다 패러다임의 전환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경제의 건전성을 위해서는 경기후퇴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킨다.
크루그먼이 생각하는 해답은 '수요'에 있다. 저자는 재화의 공급에 기반한 기존 경제학에서 수요 중심의 경제학으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불황을 '거품 호황의 필연적 결과'가 아니라 '잠재적 수요가 현실의 시장으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막힘 현상'이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충분한 수요를 경제에 제공할 방법을 찾는 것이 그가 말하는 불황 경제학의 핵심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진리로 간주된다. 자원은 한정돼 있으므로 한 가지를 가지려면 다른 한 가지를 적게 가져야 하며,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불황 경제학은 공짜 점심이 있는 상황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용할 수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에 손을 대는 방법만 알아내면 된다."(236쪽)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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