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증자공모에 무려 26조원에 달하는 돈이 몰려든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에선 사상 초유의 저금리 환경 하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잔뜩 움츠리고 있던 '뭉칫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800조원이 넘은 단기 과잉유동성이 투자대상만을 노린 채 떠다니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움직이기 시작일 경우 심각한 버블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증자의 대표주관사인 대우증권은 "13~14일 실시된 하이닉스 유상증자 공모청약은 6,816만주 모집에 24억9,824만주가 몰려 경쟁률이 36.6대 1에 달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청약증거금으로 들어온 돈은 25조8,568억원(기관과 외국인을 제외한 개인투자자 자금은 8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기업 주식공모 사상 가장 많은 금액으로, 이번 청약열기가 그만큼 뜨거웠다는 의미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07년 삼성증권 기업공개 때 청약증거금으로 들어온 17조원이다.
증권업계는 단일 기업 주식공모청약에 이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몰린 것에 대해 경악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9일 상장일까지 하이닉스가 현재 주가만 유지하더라도 공모투자자들은 30%에 가까운 수익을 낼 수 있다"면서 "정기예금 이자율이 3%대에 불과한 상황에서 그 동안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했던 부동자금이 이번 청약에 대거 몰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만큼 투자대기자금이 많다는 뜻히기도 하다.
지난 달말 현재 시중에 풀려 있는 단기유동성 규모는 약 812조원. 이중 상당액은 투자대상만 있으면 언제라도 몰려 갈 수 있는 개인들의 뭉칫돈이다. 실제로 하이닉스에 앞서 자금조달에 나섰던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대우자동차판매 기아자동차 등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공모때도 수 조원의 투자자금이 몰린 바 있다.
문제는 이들 자금이 한꺼번에 움직일 경우, 자산가격의 이상급등 속에 경제의 안정적 회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쪽으로 뭉칫돈의 대이동이 시작될 경우, 또 한차례 버블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실시된 인천 청라ㆍ송도지구 아파트 청약은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할 만큼 과열양상을 띠었으며, 강남지역 재건축 아파트 역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진동수 금융위원장 역시 이날 외신기자간담회에서 "자금이 부동산자산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기침체국면에서 유동성 환수조치나 금리인상을 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거품이 올 것이 뻔해, 당국도 마땅한 대응책 마련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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