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효자가 없었는데…."
15일 오후 전남 보성군 벌교읍 별교삼성병원 장례식장. 이날 오전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속도로 터널공사 현장에서 떨어져 숨진 이원호(22)씨의 영정사진을 어루만지던 외삼촌 배모(60)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대학 등록금 마련에 허리가 휘는 홀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돕겠다며 공사판에 나가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네요." 빈소 곳곳에서는 어머니 밖에 모르던 '4대 독자 효자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동네 주민들의 탄식도 터져 나왔다.
이씨가 사고를 당한 것인 오전 8시10분께. 보성군 벌교읍 광양~목포간 고속도로 터널공사 현장에서 측량보조일을 하던 이씨는 터널 위에서 안전 로프를 가지러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8m 아래로 떨어졌다. 사고 직후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5녀1남 가운데 막내아들로, 순천J대학 토목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씨는 지난달 15일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공사판에 뛰어들었다. 4년 전 아버지를 여의고 농사일과 집 근처 축협 사료공장에서 월급 90만원을 받고 일하는 홀어머니(58)에게 조금이나마 등록금 부담을 덜어드리겠다며 이 달 2일부터 일당 5만원짜리 측량보조 인부로 일을 시작했다.
이씨는 "내년 1학기 등록금 400만원정도는 있으니 집에서 차분히 복학준비나 잘하라"는 어머니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냥 있을 수 없었다. 늦깎이 대학생인 막내누나(25)의 등록금도 마련해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씨가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자원 입대한 것도 등록금 마련에 버거워 하던 어머니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날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어머니 배씨는 "등록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라며 오열하다 실신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빈소를 지키던 동네 주민들도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항상 웃는 얼굴로 깎듯이 인사를 하는 모범 청년이었다"며 "특히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효자 중의 효자였다"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보성=안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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