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밀레 지음ㆍ심성림 옮김/마음산책 발행ㆍ304쪽ㆍ1만4,000원
"만일 그 앨범이 제대로 출시되고 배급되었더라면,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합당한 명성을 누리며 비틀스, 롤링 스톤스와 함께 록 스타의 대열에 자리잡을 수 있었을지도…"(142쪽) 도발적 소재와 음울한 세계관 등을 담은 충격적 록으로 기존 대중음악의 판도를 뒤흔들다 리더가 의문 속에 실종되자 해체된 영국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대해 이 책은 진한 미련을 표한다.
종지부가 찍혀지지 않은 거물들의 작품에는 때로 걸작보다 더 많은 사연이 숨어 있다. 이 책에는 흔히들 '저주받은 걸작'이라고도 부르는 작품 11점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13세기말에 착공한 이탈리아 시에나 성당은 14세기 유럽을 덮친 페스트로 건설이 중단됐지만 그 세부 조각과 장식은 여느 종교건축이 필적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만들다 만 노예상 시리즈는 변덕이 죽 끓듯 한 교황 등 권력자들에 대한 풍자와 조롱의 의미가 숨어 있어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끊이지 않았다. 푸치니가 암과 싸워가며 쓰다 중단한 오페라 '투란도트'의 결말부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거대한 도전으로 여전히 열려 있는 가능성이다.
마릴린 먼로의 30번째 출연작 '섬싱스 갓 투 기브'는 예산 부족으로 덜컥대다 결국 그녀의 죽음으로 중단됐으나, 복잡한 개인사에다 제작진과의 마찰까지 얽혀 결국 먼로 신화를 풍성하게 만든 공신이기도 했다. 19세기 영국의 풍경화가인 윌리엄 터너는 작품의 끝마무리를 흐릿한 경계로 남겨 일반의 눈에는 미완성작으로 비치기 족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은 자신이 좋아한 작가 스탕달이 '파르마의 수도원'을 쓰는 데 걸린 시간보다 하루를 더 보탠 숫자 '53일'을 쓰다 숨을 거뒀다. 이 작품은 그의 유일의 미완성작이 됐다.
문학평론가이자 기호학자인 저자 이자벨 밀레(51)의 박식과 기지가 전편에 녹아있다. 대가들의 체취가 짙게 풍기는 일화를 비롯, 미완의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ㆍ비평적 맥락을 포착해 내는 시선이 예리하다. 옮긴이는 "작가의 욕망과 좌절이 엉켜 빚어낸 미완성작이란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완성되는 특별한 방식"이라며 그것을 일러 "미처 포장을 마치지 못한 선물"이라고 썼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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