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방송에서 공정성만큼 치열한 논쟁의 대상이 된 사안도 많지 않다. 한때는 방송이 과도하게 친정부적으로 공정성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오히려 정부에 너무 비판적이라고 또 다른 측면에서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5공 시절까지의 보도방송 행태라든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방송, 또는 이명박 정부 초기의 촛불시위에 대한 방송 등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공정성을 규정하는 개념은 명확하게 정립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준 또한 명료하게 제시되지 못했다.
방송의 공정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권력이 방송을 자의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합리적인 지침을 제정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민간기구라고 하지만 준 국가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공정성 심의를 하는 마당에 가이드라인 제정은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가 되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여섯 명의 연구자들에 의해서 수개월 간의 연구 끝에 만들어졌다. 연구자들 간에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초안이 마련되었고, 이 가이드라인에 방송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전문가 토론회를 열었다.
그러나 방송사에서 나온 실무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일부는 공정성 기준의 필요성에 공감을 하기도 하였으나 참석자 대부분이 정부가 왜 이러한 기준을 만들어서 검열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일견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방송현업자들의 이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방송은 방송사의 소유물이 아니다. 현재 방송사를 운영하고 있는 주체는 특정 허가기간 동안 방송사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다. 전파를 자원으로 하는 방송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실질적인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이 직접 소유하고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관리ㆍ감독을 정부에게 위임한 형태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 등이 방송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된다. 방송이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만을 반영하는 경우 당연히 정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공정성 심의기준은 너무나 포괄적이어서 규제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심의의 잣대를 들이대고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의 가이드라인에서는 규제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명료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망라함으로써 오히려 방송인들의 숨통을 틔워주고자 하였다.
지금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하는 공정성에 대한 규제가 일관성이 없다느니, 규제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 것을 규제한다느니 하고 불만들이 많지만 방송은 규제를 받고 있고, 또 제재사항이 있으면 방송사는 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 방송심의의 현주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인들은 무조건 거부한다. 규제가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번 전문가 토론회는 방송인과 규제기관 간에 서로 불신의 벽을 확인하는 자리에 그치고 말았다. 참 애석한 일이다.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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