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반도체ㆍLCD 업계가 치열하게 혈투를 벌였던 무한 서바이벌게임(일명 치킨게임)이 사실상 한국 업체들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 일본 대만업체들이 1분기에 엄청난 적자를 내며 주저 앉았고, LCD는 대만 업체들의 공장 가동률이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업체들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외국 반도체 업체들의 몰락
일본 최대 D램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는 1분기에 매출 465억엔, 영업이익은 매출액보다 많은 494억엔의 손실을 냈다고 13일 밝혔다. 전분기(-597억엔)에 이어 적자가 지속되면서, 영업손실률은 무려 106%에 달했다. 이 바람에 엘피다는 D램 업계 3위 자리를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내주고 4위로 물러났다.
그렇다고 마이크론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1분기 9억9,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나 영업적자가 무려 7억800만 달러에 이른다. 영업손실률은 71.3%다.
파산설이 나도는 대만 프로모스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1분기 매출은 18억 대만 달러였으나 영업적자가 매출의 4배인 78억 대만 달러에 이른다. 영업손실률은 무려 429.6%.
반면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국내업체들은 1분기 적자를 냈지만 영업손실률이 각각 12.8%와 39.2%에 그쳤다. 외국업체에 비하면 확실히 선방한 셈이다.
외국 반도체 업체들 왜 무너졌나
외국 반도체 업체들이 맥없이 주저앉은 이유는 2년 넘게 이어진 반도체 불황을 견뎌낼 '맷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맷집이란 '마진율 제로'에 이르는 가격하락에도 불구하고 원가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기술력, 즉 나노 공정을 말한다.
회로 선폭을 얼마나 가늘게 만드느냐에 따라 웨이퍼(원판) 한 장에서 얻을 수 있는 반도체 개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나노 공정은 원가경쟁력 확보의 열쇠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50나노 공정으로 D램을 만들 때 마이크론, 엘피다는 60, 70나노대에 머물렀고 프로모스와 1월에 파산한 독일 키몬다는 80나노 공정이 주력이었다"고 말했다.
막대한 영업손실을 떠안은 외국업체들로선 투자여력이 부족해 더 이상 공급량을 늘릴 수 없어, 결국 공급과잉해소와 반도체 가격상승 효과를 가져 온다. 실제로 1기가비트(Gb) D램 가격이 지난달 말 1달러를 넘어섰고 16Gb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도 4달러까지 치솟았다. 출혈물량공세로 결국 스스로 무너지는 '치킨 게임'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변수는 일본과 대만 정부에 구원을 요청한 엘피다가 대만 반도체업체들과 연합할 가능성. 그러나 업계 관계자는 "엘피다와 대만 업체들의 손실폭이 커서 일본과 대만 정부가 나서기에는 때가 늦었다"며 "여기에 마이크론, 엘피다, 대만업체들 모두 기술경쟁력이 한국업체들보다 떨어져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LCD 시장도 개선
LCD 분야에서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업체들은 이미 봄날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패널 가격이 오를 뿐 아니라 일부 품목은 주문이 쇄도해 공급량이 부족할 정도. 반도체 보다도 LCD쪽에서 '치킨 게임'이 먼저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32인치와 37인치 TV 패널은 공장을 100% 가동해도 고객 주문의 70~80%밖에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AUO 등 대만업체들이 공장 가동률을 80% 수준까지 올려서 쫓아오고 있으나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덩달아 치솟은 패널 가격은 노트북용, 모니터용, TV용 할 것 없이 모두 3월보다 10% 이상 올랐다. 한동안 잠잠했던 TV 패널 가격이 오른 것은 유럽쪽 30인치대 LCD TV 판매 증가와 중국이 가전 제품 구입시 보조금을 지급하는 가전 하향 정책을 최근 32인치 TV까지 확대했기 때문.
하지만 이런 특수에도 불구, 우리나라의 최대경쟁자인 대만 업체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보다 기술 및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다보니 가격 하락때 공장가동률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이를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강정원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2분기 중 노트북과 TV패널 가격이 추가로 오르고 모니터 패널은 공급 부족이 예상된다"며 "올해 국내 LCD 업체들의 고성장세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