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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현장서 거리미사 집전 이강서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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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현장서 거리미사 집전 이강서 베드로 신부

입력
2009.05.1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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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분들이 당한 고통과 억울함을 교회 안팎에 널리 알리는 것이 내 임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유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머물기로 한 겁니다."

용산참사 이래 서울 용산재개발 제4구역은 시간이 정지된 채 을씨년스럽게 버려진 상태다. 참사 후 껍데기만 남은 남일당 건물 주변엔 비극의 잔해가 여전하다. 포클레인에 찍혀 반파된 2층 점포건물은 불에 그을린 채 마치 훼손된 두개골 같은 참혹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사건 발생 110여일째, 고립과 무관심에 지친 철거민들 곁에서 매일 오후 7시 참사현장 거리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이강서 베드로 신부는 13일 사제로서 자신의 입장을 짧게 밝혔다.

문규현 신부에 이어 그가 현장미사에 참여한 것은 4월12일 부활절 때부터. 당초엔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으로 다른 지역의 사목활동도 해야 했기 때문에 5월8일까지 피정을 마치면 현장활동을 접을 예정이었다.

그는 "피정은 세상을 피해 하나님을 만난다는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로 전통적으로 척박한 광야에서 해왔다"며 "버림받은 여기가 바로 서울의 광야라는 생각에서 이곳에서 피정했고, 피정 끝에 여기 남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제로서의 양심과 믿음에 따른 활동이 이해 상대방의 합법적 재산권을 침해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용산 문제의 본질을 이해충돌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이건 이익이 우선이냐, 인간의 존엄성이 우선이냐는 가치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참사현장에서 뒤늦게 발견한 진실은 철거민들을 극한투쟁으로 몰아간 야수적 폭력이었다. 골목 어귀 세 평 남짓한 텅 빈 지물포 점방에 은박지 매트를 간 그의 '임시 사제관'을 찾은 문규현 신부가 목소리를 높였다.

"철거용역들, 여자들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희롱했어요. 죽은 동물의 사체와 오물을 점방에 던져놓고, 밤길에 마주치기라도 하면 쌍욕을 퍼부었어요.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간 것 아닙니까."

이 신부는 말을 보탰다. 그는 "그들은 합법성을 앞세워 끝까지 몰린 약자들에게 부당한 폭력을 행사했고, 어쨌든 그걸 막았어야 할 공권력은 오히려 묵인하고 방조했다"며 "이런 게 용납되면 결코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천주교는 1963년 교황 요한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있고, 세상의 문제가 결국 교회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며 "세상 속에서 교회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이곳에서 머물 것이냐는 물음에 그는 "지금 명도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나중에 집행이 진행되면 끌려나갈 것이고, 끌려나가도 합법성 뒤에 숨은 야수적 폭력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나올 때까지 철거민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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