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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꿀벌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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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꿀벌 실종

입력
2009.05.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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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통에서 벌이 사라지고 있다. 꿀을 찾아 나선 꿀벌들이 길을 잃고 되돌아오지 못해 벌통에는 여왕벌과 애벌레만 남아 굶어 죽는다. '밥벌이'에 나선 꿀벌들은 어디로 갔는가. 최근 도시 변두리나 시골 마을에서 비실비실한 꿀벌들이 많이 눈에 띈다. 죽은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날지 못하고 양지바른 바닥에 누워 꼼지락거리기만 한다. 주로 몇 마리나 수십 마리가 그러지만, 집단 폐사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부산(부산진구 연지동)의 한 찻길에 수천 마리의 꿀벌이 나타나 119구조대가 출동했다. '벌떼'같지 않은 놈들이어서 손쉽게 퇴치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꿀벌이 부족해 과일농가가 비상이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과수(果樹)농가가 많은 돗토리(鳥取) 아오모리(靑森) 등 7개 현(縣)에 꿀벌이 부족해 수분(受粉)을 못한 과수들이 '노총각ㆍ노처녀'로 늙어가고 있다. 농민들은 양봉업자로부터 꿀벌을 빌려오거나 손으로 일일이 수분작업을 하고 있다. 꿀 때문이 아니라 벌을 얻으려 꿀벌통을 훔쳐가는 경우도 많다. 작년 가을부터 그랬다는데, 일본 정부는 아르헨티나로부터 여왕벌을 수입하는 협상을 하는 중이다. 나가노(長野)현에서만 230만 마리가 죽었고, 인근에서 1,000만 마리 이상 실종됐다.

▦2006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한 양봉업자가 새끼벌만 남은 꿀벌통을 당국에 신고한 것이 집단실종의 첫 사례였다. 당국은 1950년대 전국에 600만개였던 벌통이 240만개로 줄었음을 확인했다. 지구상에서 약 25%의 꿀벌이 사라진 사실도 알게 됐다. 군집붕괴현상(CCD), 집 나간 꿀벌들이 돌아오지 않아 '꿀벌사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지구자기장을 감지해 길을 찾는 꿀벌들이 휴대폰 인터넷 등 전자파가 가득한 곳에서 방향감각을 잃는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이스라엘 급성마비바이러스(IAPV)라는 설도 있고, 농약과 살충제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밖에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꿀을 못 먹어서가 아니다. 지구 식물의 3분의 1이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蟲媒花)이고, 나머지는 풍매화(風媒花)다. 충매화의 80%는 꿀벌의 역할에 의존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세계 도처에서 꿀벌의 집단폐사와 집단실종이 확인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근 경북 문경시와 칠곡군에서 유사사례가 신고됐다. 수분을 위한 꽃가루마저 중국에서 수입하는 형편에 '꿀벌 보호'는 사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두려운 걸 어쩌나.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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