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대표실. 박희태 대표가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는 '당시(唐詩)'가 들려 있었다. 평소 사자성어로 상황을 예리하게 압축하고 상대를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등 한문에 조예가 있는 그이기에 고전으로 마음을 달래고 해법을 구하려는 듯 보였다.
박 대표가 이날 찾은 사자성어는 '소이부답'(笑而不答ㆍ웃을 뿐 답하지 않는다). 그는 기자들에게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백(李白)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시구 '소이부답'이 답"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소(笑)'는 허한 웃음으로 느껴졌다.
사실 박 대표는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자신이 추진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은 초장에 무산됐고 역으로 지도부 책임론, 조기전대론이 묵직하게 압박해 들어오고 있다. 돌파구는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물러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 가시방석의 처지인 것이다.
물론 박 대표는 '허한 웃음'을 부인했다. 그는 "소이부답은 '내 마음이 한가롭고 편안하다'는 의미"라며 "그런 평상심을 갖고 앞으로 여러 고려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분이 확산되는 어려운 국면이지만 하나 하나 헤쳐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은 그렇지 않다. 박 대표 본인도 "여러 의견을 듣고 있고 계속 구상하고 있다"며 '고민 중'임을 밝혔다. 박 전 대표와의 회동에 대해서도 "아직 연락을 못 드렸다.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박 전 대표를 만나서도 해법이 마련되지 않거나, 만나지도 못할 경우에는 그 동안의 포괄적인 비판이 아예 사퇴론으로 옮겨갈 수도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할 때까지 대표실에 머물렀다. 하루종일 난마처럼 얽혀있는 쇄신과 화합의 비상구를 찾기 위해 골몰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표실을 떠나는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자택으로 가서도 불면(不眠)의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 고민의 끝이 어떤 사자성어로 나타날지….
박민식 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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