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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육아휴직자 윤유현씨의 '후회 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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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육아휴직자 윤유현씨의 '후회 없는 선택'

입력
2009.05.12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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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의 한 어린이집 앞.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 사이에 한 남성이 눈에 띈다. 9개월째 육아휴직 중인 윤유현(34)씨다. 어린이집을 나선 네살배기 아들 영서가 아빠를 발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다.

집까지 불과 400여m밖에 되지 않지만,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봄꽃들 구경도 하고 가게에 들러 우유도 사 마시다 보면 20~30분은 족히 걸린다. 더러는 벌건 대낮에 아이랑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그를 실직자로 지레짐작 해 안됐다는 듯 흘끔 쳐다보는 시선도 있다.

휴직 초반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안됐네" "공사장에라도 나가지, 쯧쯧" 하는 수군거림을 듣고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젠 아랑곳하지 않는다. 영서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하는 길, 윤씨에겐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대통령까지 나서 대책을 시급히 세우라고 지시했다지만, 아이를 낳기도 기르기도 힘든 사회적 환경은 좀처럼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해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의 육아환경 선진국 사례를 들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남성육아휴직 제도다.

특히 스웨덴은 육아휴직기간 480일 중 남성이 의무적으로 60일을 사용하도록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적으론 아이가 만 3세가 되기 전까지 남성도 최장 1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림의 떡이다. 실제 지난해 고용보험의 육아휴직급여 신청자 2만9,145명 가운데 남성은 1.2%인 355명에 그쳤다.

윤씨 역시 육아휴직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실제 휴직 뒤 부딪친 현실도 녹록지 않다. 일단 돈이 궁해졌다. 연 3,000만원의 수입이 줄어드니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중학교 교사인 아내의 월급에서 대출금 갚고 공과금 내고 나면 한 달 살림 꾸리기도 빠듯하다. 그나마 고용보험에서 지급되는 월 50만원의 육아휴직 급여로 아이 어린이집 비용을 낼 수 있어 다행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경력 관리에 대한 욕심도 버려야 했다. 경력 5년차 인천공항 관제사인 윤씨는 2007년 공항을 무대로 한 드라마에 출연한 이후 여러 언론 인터뷰에 나올 정도로 '잘 나가는 관제사'였다.

그러나 육아휴직 중 인사고과 평가는 B등급이었다. 그는 "어차피 A등급 받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작 평가를 받고 나니 좀 허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씨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가족부터 그랬다. 지난해 8월 육아휴직 결심을 알리자 부모는 "우리가 봐줄 수도 있는데 남자가 무슨 육아휴직이냐"며 뜯어 말렸다.

동료들도 "아이 엄마는 뭐 하고 남자가 애 본다고 직장을 쉬느냐. 미친 것 아니냐"며 혀를 찼다. 직장에서 잘린 뒤 육아휴직이라고 둘러댔으려니 지레짐작 한 처가 식구들은 새 직장을 알선해 주겠다고 나섰다. 실직자로 오해하는 이웃들의 시선에는 이제 면역이 생겼다.

그래도 윤씨는 "육아휴직 한 걸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초 아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뒤 영서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아이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신경질을 내는 일이 잦아졌고, TV에 빠져 TV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어린이집을 끊고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영서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해 3월부턴 하루 3시간씩 어린이집을 다닌다. 주말이면 "빨리 월요일이 돼서 친구들 만나고 싶다"는 아들을 볼 때면 '육아휴직하길 잘했다'는 생각뿐이란다.

복직을 3개월 앞둔 윤씨는 요즘 더 바빠졌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아내를 출근시키고, 아이를 깨워 어린이집에 바래다 준 뒤 오전 11시부터는 블로그(blog.naver.com/blue787800) 작업에 매달린다.

휴직을 결심하는 과정부터 아들과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육아휴직을 망설이거나 막 모험에 뛰어든 아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픈 마음에서다.

윤씨는 "모든 아빠들이 거리낌 없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빨리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평생 딱 한 번, 1년간 아이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걷고 뛰고 말을 배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이죠. 기업들이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정부도 그런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각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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