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이미 지난 게 아닐까?'
최근 주가 상승이나 환율 하락 등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지난해 10월24일 938.75까지 추락했던 종합주가지수는 8일 1,412.13까지 치솟았다. 6개월여만에 50% 이상 오른 것. 반면 3월2일 1,570.30원까지 상승했던 원ㆍ달러 환율은 8일 1,247원까지 하락했다. 제2의 외환위기를 걱정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급격한 원화가치 상승에 제동을 걸어야 할 판이다.
기업들 1분기 실적은 이러한 경기 회복 기대감을 확산시키기에 충분했다. 대규모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됐던 삼성전자가 오히려 흑자전환하고, LG전자와 SK에너지 등도 시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내 놓았기 때문이다.
1월 전년동기대비 34.2%나 폭락하며 공포감을 조성했던 수출도 점차 급락세가 진정되고 있다. 3월과 4월엔 오히려 무역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 경기 회복론에 힘을 보태줬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기 회복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 실물 경제 현장에서 뛰는 우리 주요 기업들의 판단이다. 30대 주요 기업 기획 담당 최고책임자 및 임원들은 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의견에 단 한 명도 동의하지 않았다. 저점 근처라는 의견도 컸으나 아직 바닥을 지나지 않았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특히 올해안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보는 기업은 10%에 불과했다. 90%의 기업은 경기 회복이 내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 극명해졌고 결국 본격적인 바닥 여부의 판단은 기업들의 본격적인 투자열기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설문에서 기업들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사업계획서를 '매달 수정하고 있다'(43.3%)고 밝혔고, 한 기업은 아예 매주 변경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바닥 운운하는 것은 뜬금없다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현 시점에서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할 정책에 대한 설문에 절반에 가까운 13곳의 기업이 내수진작을 꼽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는 정부가 수출 총력전을 펴고 있는 것과는 다소 괴리되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수출은 어차피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좌우되기 마련"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내수를 진작, 소비를 회복시키는 경제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도 수출 보단 내수 진작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기업들의 목소리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우리나라의 고용구조 및 노동연관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수출의 취업유발계수는 9.9명인 데 비해 소비는 17.3명이나 됐다. 10억원어치를 산출하기 위해 직접 투입되는 인원(연관 산업 고용 효과 포함)이 소비가 수출의 2배 가까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가장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최근 경기 바닥론이 확산되며 사회 분위기가 다소 풀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A기업 최고경영자는 "사실 앞으로 몇 년간은 우리나라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도약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들은 체질을 개선하는 데 매진하고, 정부는 신속하고 예외없는 구조조정 등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데 이런 일을 시작도 하기 전 위기가 다 지나간 것처럼 들뜨게 된다면 미래는 암울해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B기업의 한 임원도 "지금 일본 기업들은 유례없는 인원 감축과 공장 폐쇄 등을 강행하며 더 강한 기업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다"며 "환율에 취해서 위기를 못 느끼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때를 놓친다면 나중에는 더 강해진 일본 기업들에 판판이 깨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C기업 관계자도 "지금은 허리띠를 풀고 한 숨 돌릴 때가 아니라 신발끈을 다시 묶고 뛰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 설문 응해 주신 분들
이동희 포스코 사장(CFO), 강학서 현대제철 경영관리본부장 부사장,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부사장, 이수호 현대중공업 부사장(CFO), 정도현 LG전자 부사장(CFO), 황열헌 현대모비스 기획담당 부사장, 고영렬 대우조선해양 기획실장 전무, 권순영 두산 기획담당 전무, 유천일 STX 전략기획본부장 전무, 윤욱진 한화 경영기획실 전무, 이성상 GM대우차 대외정책본부 전무, 고영수 삼성토탈 기획담당 상무, 김상돈 LG텔레콤 상무(CFO), 김정수 하이닉스 IR담당 상무, 김형건 SK에너지 경영전략실장 상무, 도민해 삼성중공업 자금팀장 상무, 박영상 현대오일뱅크 재무부문장 상무, 박홍재 현대기아차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장 겸 상무, 안종범 에쓰오일 경영기획실장 상무, 이석화 LG디스플레이 경영기획담당 상무, 이지승 LG화학 경영기획담당 상무, 정찬수 GS칼텍스 경영기획부문장 상무, 김계복 동국제강 기획실장, 김기만 한국가스공사 경영전략실장, 르노삼성차, 삼성전자, 삼성SDI, 한국전력, KT, SKT (직책 및 이름 가나다순)
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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