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 이전인 2007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유럽의 경제 열등생이었다.
영국이 더 시티(런던 금융가)로 상징되는 자유시장경제로 호황을 구가하고, 독일이 수출 대국으로 한껏 전성기를 구가한 반면 프랑스는 과도한 정부 규제로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 위기가 이런 유럽의 경제 구도를 확 바꿔놓고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노던록, 독일 하이포 레알 에스테이트(HRE) 등 양국 은행들이 줄줄이 공적자금을 받거나 국유화하고 있지만 프랑스 은행에는 이런 사례가 없다"며 프랑스 금융 시스템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영국과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각각 마이너스 4.1%, 마이너스 5.6%로 전망되는 것과 달리 프랑스는 마이너스 3%로 훨씬 건실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결과가 나온 배경으로 프랑스의 정부 주도형 경제 시스템을 지적했다. 프랑스는 2007년 기준으로 공공부문 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45%), 독일(44%)보다 월등히 높다. 프랑스 정부가 군수산업 지원, 도로 건설, 문화재 복구 등에 대규모 지출을 하면서 경기를 부양하고 있는 것이다.
AFP통신은 "프랑스는 유럽연합(EC) 회원국 가운데 정부 규제가 유별하게 강력하다"며 "프랑스 은행들이 정부 규제에 맞추느라 부실 대출 등을 억제해왔다"고 지적했다. 이 통신은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프랑스의 정부 주도형 경제가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치자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영국은 은행의 잇따른 대규모 부실과 부동산 버블, 파운드화 가치 하락으로 다시 IMF 관리 체제에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이와 관련, AP통신은 "영국은 1980년대 마가렛 대처 당시 총리가 대처리즘을 내걸고 공기업 사유화, 공공부문 축소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위기가 잉태됐다"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수출 주도형 경제 시스템도 글로벌 경제 위기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독일 정부는 최근 "독일의 올해 GDP가 전년 대비 6% 감소해 EU의 평균 4% 감소보다 심각할 것이며 GDP 감소의 60%가 수출 감소에서 빚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프랑스의 정부 주도형 경제를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의 모델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는 결국 회복될 것"이라며 "각국의 교역이 활발해지면 수출 기반의 독일 경제는 빠르게 활력을 되찾겠지만 프랑스는 정부 규제가 족쇄로 작용해 경제 회복이 더딜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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