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월 13일, 미국 워싱턴 내셔널공항을 이륙한 에어플로리다 여객기가 곧 바로 포토맥강에 추락했다.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전원이 목숨을 잃었다. 블랙박스에 담긴 최후의 기록을 보면 기장과 부기장이 서로 엇갈린 의견을 내며 우왕좌왕했던 것이 참사의 주된 원인으로 드러났다.
올 1월 15일, 미국 라구아디아공항을 출발한 에어버스 A320여객기는 이륙 직후 새떼가 프로펠러에 빨려 들어가 엔진이 멈추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기장은 침착하게 허드슨강에 여객기를 불시착 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활주로 대신 강물에 내려앉은 기체는 탑승자 전원을 살려냈다.
위의 두 예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빠른 판단의 중요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세계는 '신종인플루엔자'에 온 신경이 쏠려있다.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정체가 명확하지 않고 새로운 변종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어쨌든 지구촌을 강타한 이 '신종바이러스 군단'은 경우에 따라 무동력 상태로 날고 있는 여객기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위기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자세를 보면 '허드슨 강의 기적' 보다는 '포토맥 강의 참상'과 많이 닮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MI, SI, 등 그 명칭을 놓고도 갈팡질팡 하는 사이 친절한 방송사들은 톱 뉴스로 화면에 축산농가와 돼지막사를 쉴 새 없이 보여주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신종인플루엔자가 돼지와는 무관하다고 아무리 말해봤자 사람들의 뇌리에 남은 불신과 새까맣게 타 들어간 양돈농가의 또 다른 상처는 치유될 방도가 없어 보인다.
상기해보면, AI(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했을 당시 꼭 이와 같이 양계장이 단골 뉴스 화면에 등장했다. 그런데 일본은 발 빠르게 이를 '홍콩 조류독감'이라 명명하며 닭고기와는 무관하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번에도 그들은 사태가 터지자마자 일찌감치 '신형인플루엔자'로 이름 짓고 축산 농가를 세심하게 배려하면서 민첩하게 대처했다.
어떤 문제든지 초기에 대응을 잘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농식품 안전 행정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세히 보면 우리는 먹을거리의 관리 흐름이 다소 복잡하게 되어있다. 가령 농산물의 경우 생산단계는 농식품부가 맡고 유통단계부터는 식약청이 관리한다. 그런데 축산물은 생산·수입·가공·유통단계 모두를 농식품부에서 담당하고 소비단계만 식약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래서는 농축산물의 안전정책이 원활하게 가동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선진국들처럼 농식품 안전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특별 관리 기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일원화된 업무 체계로 먹을거리와 관련된 변종 인플루엔자 출현 등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터질 때마다 큰 피해를 입는 애꿎은 축산 농가를 보호하는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덕규 농협중앙회 이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