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부 지역에서 휴대폰 통화를 강제 차단하는 방법을 논의해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이동통신업체 3개사, 은행연합회, 금융감독원 관계자들과 '전파 차단 제도' 회의를 가졌다. 전파 차단 제도란 극장이나 공연장, 학교 등 특정 지역에서 강제로 휴대폰 통화를 못하도록 이동통신 전파를 막는 방법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시설에 방해 전파를 내보내는 장치를 부착해 휴대폰이 이동통신 전파를 수신하지 못하게 한다.
청와대의 경우 대통령 외부 이동시 테러 행위를 막기 위해 전파 방해 장치를 갖춘 경호실 차량이 따라다니며 전파 차단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간혹 대통령 외부 행사시 인근 지역에서 휴대폰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방통위가 이 같은 제도를 검토하게 된 것은 경찰청의 요청 때문이다. 경찰청은 최근 휴대폰을 이용한 금융 사기 '보이스 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들을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으로 오도록 유인한 뒤 피해자가 현금을 빼내면 가로채는 범죄가 늘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ATM 주변에서 휴대폰 통화를 차단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단순 발상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 실행을 위한 방안을 방통위에 공식 문의한 것이다.
방통위는 경찰청은 물론 학계와 문화계 등이 같은 제안을 해와 휴대폰을 이용한 시험 부정 행위와 공연 관람시 방해가 되는 휴대폰 통화 등을 막기 위한 전파 차단 등을 이 기회에 복합적으로 검토했다. 문제는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크다는 점이다. 전파 방해 장치를 극장이나 은행 등에 설치할 경우 주변 지역까지 휴대폰 통화가 차단된다. 따라서 해당 장소를 지나가기만 해도 휴대폰 통화가 갑자기 끊기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경찰청이 검토한 ATM 설치지역은 전국 은행 지점 뿐 아니라 전철 역, 상가 등 상당히 광범위하기 때문에 휴대폰 통화가 안되는 지역이 크게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비상 상황시 반드시 휴대폰 통화가 필요한 사람들마저 통화를 하지 못해 피해를 볼 수 있다.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점을 들어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이동통신 업체 관계자는 "전파 방해 장치는 특정 회선을 차단하는 유선전화와 달리 지역 전체를 막는 것이어서 이용자들 불편이 클 것"이라며 "개인 사생활 침해 등 논란의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방통위도 부작용을 의식한 듯 전파 차단 제도에 회의적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전파 차단을 하려면 전파법을 개정해 법제화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한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파 차단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방통위에서 경찰청 등에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회의까지 개최해 타당성을 검토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파 차단 제도는 빈대 잡으려고 집을 태우는 격"이라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발로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사안을 회의까지 개최해 논의한다는 것은 시간낭비이며 이해가 안가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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