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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노란 성게 알밥 한입, 파란 바다가 그리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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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노란 성게 알밥 한입, 파란 바다가 그리워지다

입력
2009.05.07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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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게 알 밥

맛있는 것이 잔뜩 나는 5월이다. 특히 이제부터 초여름까지 맛이 오르는 성게의 노란 알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품. 빈혈에 좋고 알코올을 해독해 주는 기능까지 있다 하니, 삐죽한 가시로 덮인 성게의 반을 기꺼이 가르게 된다.

황금빛을 띠는 성게 알은 노화방지 성분을 갖고 있어서 어버이날로 시작되는 이번 주말 메뉴로 제격이겠다. 입 안에 넣으면 스르륵 풀어헤쳐지는 바다의 맛과 향기. 성게 알은 소화 흡수도 빨라서 연세 드신 분들께 강장제로도 좋다.

성게 알은 제주도 토속음식에 많이 이용되기 때문에 조리법이 궁금하다면 제주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먹어 온 방법을 여쭈면 정답일 게다. 성게 알을 마지막에 슬쩍 떠 얹어 마무리하는 해물 뚝배기, 성게칼국수, 미역과 함께 끓이는 성게 미역국 등은 간단한 조리법에 비해 맛이나 영양이 주는 감동이 크다.

작은 뚝배기에 일인용 솥밥을 지어보자. 다시마 육수를 섞어 넣어 밥물을 잡고 윤기 나도록 솥밥을 지은 다음, 송송 썬 쪽파와 성게 알을 살포시 올려 뜸을 들인다. 양념장이랑 참기름 한 방울만 더하면 어버이날 선물이 따로 필요 없는 보양식이 될 것이다. 제주도 중문에 위치한 '가람 돌솥밥'에 가보면, 테이블 위에 두 개의 양념 통이 있다.

하나는 양념장, 또 하나는 마가린인데, 엄지손가락만한 오분작 등 해산물을 얹어 지은 솥밥에 마가린을 조금 넣어 비비면, 그 맛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정에서도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주산 성게 알을 얹어 뜸 들인 솥밥에 버터를 손톱만큼 얹어 주면, '어른 메뉴'인 솥밥도 아이들이 수월하게 먹을 수 있다.

■ 양배추 김치, 고추김치

우리는 백색을 볼 때 순수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길들여져 왔다. 어린 아이들의 하얀 피부나 하늘의 흰 구름, 티끌 한 점 없는 백색 웨딩 드레스를 보면 깨끗하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특히 동양에서는 오랜 세월 '도자기 같은 피부'나 '백옥같은 얼굴'로 미인을 묘사했으니, 21세기에도 많은 이들이 화이트닝에 열광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며칠만 햇볕에 쏘다녀도 얼굴이 금방 타버리는 체질이 못마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두어 시간만 밖에 있다 들어오면 홀랑 얼굴이 타버리니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나의 첫인상은 딱 '일 열심히 하게 생긴' 여자다. 가을이 되어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피부색이 다소 옅어지고, 결국에는 본래의 색으로 돌아온다지만,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 비타민C를 챙기게 된다. 비타민C가 피부를 살린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타민C가 과일이나 채소에 많이 들어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 그렇다면 매일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찾는 것이 중요한데, 비타민이 많이 함유된 키위나 딸기를 매일 먹기에는 좀 아까운 감이 있다. 일부러 신경쓰지 않으면 과일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기가 의외로 어렵기도 하고.

비타민C가 많이 들어 있고, 또 지금 제철을 맞아 단맛이 한껏 오른 양배추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히 소금물에 숨만 죽인 양배추에 깨끗이 다듬은 깻잎, 밤 채와 홍고추, 미나리를 켜켜로 쌓고 끓였다 열기를 식힌 배합초를 부어 익혀 먹는 양배추 백김치는 만들어두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아니면 비타민C 함유량이 높은 풋고추를 잘 절였다가 무, 젓갈, 부추 등으로 만든 김치 속을 넣어 소박이로 만들어도 맛있다. 매일매일 '화이트닝'할 수 있는 보약같은 반찬들이다.

성게 알 비빔밥을 상에 낼 때 양배추 백김치나 풋고추 김치도 좋지만, 지금 맛이 좋은 도라지를 또 빼 놓을 수 없다. 도라지는 쓴 맛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인데, 껍질 벗긴 도라지를 굵은 소금으로 뽀드득 씻어서 행군 다음 잘게 찢어보자.

별도로 데쳐내지 않고 초무침만 해도 맛있다. 여기에 절였다 꼭 짜낸 오이나 오징어를 섞어 무쳐도 어울린다. 오이에는 비타민이 많고, 도라지는 기관지에 좋으니 바깥 돌아다닐 일이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반찬이겠다.

어버이날 새삼 무얼 드릴 수 있을까 고민된다면, 잘 지은 밥에 도라지 쪽쪽 찢어 새콤하게 무친 반찬이랑 성게 알 띄운 미역국이랑 일단 차려보자. 엄마가 차린 상보다 엉성해도, 그분들은 맛있게 자셔줄 것이다. 자식새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평생 주고 싶은 마음만 넘치는 사람들이 우리 엄마들, 아빠들이니까.

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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