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양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잠재적인 유럽의 경계선이자 러시아의 제국적 야망을 억제하는 지정학적 급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두 나라는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한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 받고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서방, 벨라루스는 러시아에 치우쳐 있지만 두 나라는 최근 서방-러시아의 갈등과 자신들을 향한 '러브콜'을 이용, 절묘한 등거리 외교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는 도시 복판에서도 감지된다.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의 문화중심지인 10월 광장에는 사각뿔 모양의 대형 이정표가 있다. '모든 길은 민스크로' 라는 표어 아래 유럽 주요 도시와의 거리가 새겨져 있다. 모스크바 600㎞, 바르샤바 700㎞, 키예프 570㎞…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독립광장 앞에도 비슷한 이정표가 있다. 레오니드 쿠츠마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은 "우리는 동도, 서도 아닌 세계로 간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표적 친러 국가 벨라루스는 1991년 독립 후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모색한 유일한 국가로 여전히 소비에트 경제발전 모델을 답습하고 있다.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소비에트 시절의 국가 상징물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방 쪽에 손을 내밀며 자국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그루지야 전쟁 당시 벨라루스는 러시아를 지지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중립을 선언했다. 금융위기 후 러시아로부터 20억달러를 빌리고도, 서방의 영향력이 강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서도 거액을 차용했다. 외형적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시내 풍경은 북유럽이나 스위스 도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정돈돼있고 깨끗하다. 2004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의 국가연합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31%, EU와의 통합 지지가 20%, 양쪽 모두 지지가 18%로 나타나 절대적인 러시아 지지 의식이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독립 후 줄곧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EU 가입을 추진하며 친서방 노선을 견지한 우크라이나에서는 서서히 '러시아적 요소'가 부각되고 있다. 2004년 친서방 정권을 출범시킨 '오렌지 혁명'의 주역이자 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인 율리아 티모셴코 총리는 지난해 발생한 가스분쟁 해결 과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와 유대를 강화했다.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는 나토, EU 가입 문제는 꺼내지도 않았다.
러시아 성향 주민의 지지를 얻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정치적 판단과, 러시아 경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을 깨달은 듯한 행보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빅토르 필리핀코 국립 타라스셰브첸코대 역사학부 교수는 "EU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러시아 가스와 원유를 수입하는 만큼 우리는 러시아와 더욱 실용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러시아가 관계 복원 움직임을 보이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러시아의 긴장관계를 활용한 등거리 외교와 실용외교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호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교수는 "두 나라는 러시아와 서방 중 한 쪽을 택하기보다 자국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안보적 가치를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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