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제맛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제맛

입력
2009.05.07 23:52
0 0

순대국집의 깍두기를 베어물었다가 단단해진 무의 심지를 느꼈다. 세질 대로 세진 무의 섬유소를 질근질근 끊어 먹자니 이제 당분간 맛있는 무는 먹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예전에는 이렇듯 사소한 일에 아쉬워하지 않았고 특히 먹을 것에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무꽃이 피는 계절이다. 꽃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때부터 무는 수분이 줄어 쭈글쭈글해지고 기능을 상실한 물관들이 질겨지면서 가장 맛없는 무가 되어버린다. 설렁탕, 곰탕은 물론 평양냉면까지 덩달아 제맛을 잃게 되었다. 무 때문이란 걸 몰랐을 때는 괜히 선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그 집 냉면맛이 변했다고 투덜댔다. 무절임 맛도 떨어져 걱정인데 괜히 음식솜씨까지 의심받게 된 냉면집 주인은 속이 무척 상했을 것이다.

무는 역시 겨울무다. 살이 단단하고 수분도 많다. 깍두기도 무절임 맛도 겨울이 절정이다. 아, 겨울무가 출하되는 11월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우리 몸도 계절과 함께 순환한다. 오이맛도 가지맛도 옛날 제맛이 나지 않았던 건 제철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겨울 파묻어 둔 무를 찾느라 여기저기 애먼 구덩이만 파던 이모부 생각에 웃음이 터졌다. 자신이 파묻어 둔 무를 찾지 못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허리춤에 두 손을 대고 크게 웃던 그 젊은이가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었다.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