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구 마전동에 아파트를 갖고 있는 김모(48)씨는 2007년 무조건 대출을 해준다는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가 솔깃한 제의를 받았다. "정부가 서민 전세자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는데 계약서만 써주면 대출금의 20%를 준다"는 제안이었다.
선뜻 내키기 않았지만 돈이 필요했던 임씨는 계약서를 써줬고 며칠 뒤 브로커로부터 400만원의 목돈을 받았다. 김씨는 손쉽게 돈을 버는 재미에 지난해 8월까지 1년간 무려 13차례나 전세계약서를 써줬고 이를 통해 2억7,530만원의 거금을 손에 쥐었다.
경기 안산시 선부동에 다가구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배모(46)씨도 비슷한 제의를 받고 2007년 10개월 동안 22차례나 주택을 임대해준 것처럼 속여 7,500만원을 챙겼다. 배씨 주택의 경우 한, 두달 만에 서류상 임차인이 계속 바뀌었지만 대출 은행은 이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부가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빌려주는 국민주택기금 전세자금을 100억여원이나 부정대출 받은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기경찰청 수사과는 6일 금융기관에 위조한 전세계약서와 재직증명서 등을 제출하는 수법으로 2006∼2008년 460차례에 걸쳐 100억여원의 주택전세자금을 허위로 타낸 혐의(사기 등)로 이모(46)씨 등 브로커 5명과 김씨 등 건물주 5명을 구속했다. 또 부정임차인과 보증인 등 가담자 481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349명을 수사 중이다.
브로커 이씨 등은 금융기관들이 임차인의 정보는 공유하지만 주택소유주 명단은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생활정보지를 통해 무자격자들을 모집한 뒤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 대출서류를 위조하는 방법으로 기금을 타냈다.
이렇게 대출받은 돈은 임차인 40%, 보증인 40%, 건물주 20% 등으로 나눠 가졌으며 브로커들은 각자로부터 15%의 수수료를 공제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대부분이 빚을 지고 있어 브로커들이 먼저 빚을 갚아주는 수법으로 이들을 관리했다"면서 "하지만 480%의 고이자를 떼 사실상 가장 많은 돈을 챙겼다"고 말했다.
또 "금융기관이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국토해양부에 통보하면 기금에서 변제 받기 때문에 심사를 철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을 브로커들이 노렸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부정대출 가담자 명단을 금융기관에 통보해 대출금을 회수토록 했으나, 수사가 끝난 270건의 부정대출 중 지금까지 상환된 것은 3건에 불과하다.
근로자ㆍ서민 주택전세자금은 국토해양부가 연소득 3,000만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를 상대로 연 4.5%의 저리로 전세자금을 최대 7,000만원까지 빌려주는 것으로 1994년부터 도입됐으며 지난해 3조3,000억원이 편성됐다.
이범구 기자 gogu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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