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고립의 퇴행을 택한 북한

입력
2009.05.06 01:00
0 0

지난해 상반기 어느 시점 이전과 이후의 북한은 판이하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관망하다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판단한 때부터 금강산 관광객 총격 피살 사건이 발생한 7월11일 사이의 어디쯤일 것이다. 그 이전의 북한은 6ㆍ15와 10ㆍ4 선언을 토대로 체제 유지와 제한적 개혁개방을 병행 추구했다. 여기에는 체제 유지와 제한적 개혁개방이 크게 상충하지 않으며 남한이 김정일 체제를 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북한은 동유럽 공산권 붕괴와 동ㆍ서독 통일 이후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크게 두려워하고 경계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베를린 선언과 6ㆍ15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에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으며 북한의 경제회복과 국제사회 진출을 돕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나서자 남북협력과 국제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회생 및 체제 유지의 희망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을 비롯한 남북경협과 교류 확대는 그런 희망의 산물이다. 북한의 핵 포기와 김정일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6자회담도 결국 같은 희망과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한다.

막 나가는 강경 질주으름장

그러나 지금 2000년 이후 8년 동안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틀을 떠받쳤던 축과 중요 사업들이 거의 다 무너졌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1년이 다 되고, 개성공단은 존폐 기로에 처했다. 6자회담도 사실상 와해 상태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발사에 대한 유엔안보리의장 성명 채택에 반발, 절대로 다시 참가하지 않겠다고 못박아 버렸기 때문이다.

북한은 2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수로 발전소 건설의 첫 공정으로 핵연료를 자체 생산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지체 없이 시작하겠다고도 했는데,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을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막 나가는 북한의 강경 질주를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술이나 내부 사정에 따른 전술로만 볼 일이 아니다. 북한은 부시 정부에 비해 자신들에게 훨씬 우호적일 수 있는 오바마 정부가 정식으로 대북정책을 펼치기도 전에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북한이 오바마 정부와의 협상을 생각했다면 역효과가 불 보듯 뻔한데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왔을 리 없다. 북한은 그들 나름대로의 전략과 시간표에 따라 일을 진행시킨 것으로 봐야 한다. 그 배경에는 소위 '6ㆍ15 시대'와는 전혀 다른 인식의 전환이 자리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국제사회는 그 동안 북한의 변덕과 핵 포기의지의 불확실성에 극도의 피로감을 느껴왔다. 하지만 북한도 남북경협 확대에 따른 체제불안 가중, 핵 포기와 체제 보장의 맞교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을 놓고 회의와 피로감이 높아져 왔을 것이다. 여기에 김정일 건강 및 후계 구도 문제가 겹치면서 남북관계 진전 및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제 회복 및 체제 유지를 꾀하겠다는 동기를 상실해 버렸을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가 정치적으로는 국방위원회 권한 확대를 통한 선군정치 강화, 경제적으로는 혁명적 대고조를 통한 자력갱생, 군사적으로는 핵 보유 기정사실화 및 장거리 미사일 능력 강화가 아닐까 싶다.

발길 돌려세울 새로운 틀을

이런 흐름이 분명하다면 남북관계 회복은 물론, 북핵이나 장거리 미사일 문제 해결 전망은 매우 암울하다. 앞으로 남한과 국제사회는 제한적이나마 외부를 지향했던 '6ㆍ15 시대'의 북한과는 판이한 성격의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은 당분간은 협상을 통해 무엇을 얻기보다는 핵 보유 기정사실화와 장거리 미사일 능력 확보 쪽으로 매진할 가능성이 크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말 대로 "스스로 무덤을 깊게 파는" 것이지만 현재로서는 별 뾰족한 대책이 없다.

퇴행적 고립이라는 잘못된 선택의 길을 가는 북한을 되돌리려면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지렛대를 다 소진해버린 우리 정부에는 아무런 수단과 구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미국과 중국만 번갈아 쳐다봐야 하는 빈궁한 형편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