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달변이다 싶다. 어떤 질문에도 전혀 막힘이 없다. 메시지도 명쾌하다. 원래도 그런 달변가이긴 하지만, 1년여 전 취임 당시와 비교해보면 적잖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현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확실한 철학이 섰다는 얘기다.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나 지난 14개월의 성과, 그리고 향후 정책의 방향을 들어봤다.
- 취임한 지 14개월 가량이 됐다. 가장 보람 있고 뿌듯한 성과는 무엇인가.
"공정위 정책의 방향을 '사전적 규제'에서 '사후적 감시'로 전환하는 것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일례로 출자총액제한제로 대변되는 사전적 규제를 없앤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시장 내 경쟁이 활성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본다. (부작용에 대한) 많은 염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염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사후적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다. 특히 과거엔 대규모기업집단 시책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소비자 정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비자 정책은 과거에 비해 훨씬 활성화됐다고 자부한다."
-지난 1년여간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썩 좋지는 않은 것 같다.
"감세, 공기업 민영화 등 정책의 변화가 있으면 이해집단 간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나하나 정책에 대해 비판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큰 방향으로 보면 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옳다고 믿는다.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면 국민들의 평가도 조금씩 나아질 것으로 본다."
-올해 공정위가 서민과 중소기업의 피해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식음료, 교육, 문화콘텐츠, 물류ㆍ운송, 지적재산권 등을 5대 중점감시업종으로 선정해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또 불법다단계나 상조업, 대부업, 그리고 가맹사업과 같이 불황기일수록 서민 피해가 늘어날 수 있는 분야를 집중 감시하는 한편 9월 정기국회에서 필요한 법 개정에 나설 예정이다. 공정위가 정말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 경제가 어려우니까 조사를 다소 완화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위기 상황일수록 불균형이 확대될 수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유통업체와 납품업체 간 힘의 불균형이 더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대로 방치하는 경우 서민과 중소기업이 더욱 어려워져 시장 경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특히 호황, 불황을 떠나서 시장을 지키려는 의지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 추가적으로 감시를 강화할 업종은.
"국민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통적 독과점 업종이다. 또 해외 원자재 사용 비율이 높은 업종도 중점 감시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통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이다. 태스크포스(시장상황점검 비상TF)를 통해 상시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외국과의 가격 비교에 나설 것이다. 만약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별도의 신고가 없더라도 즉각 조사에 착수할 것이다."
- 대부업 표준계약서나 연예인 표준계약서 도입 같은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일부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표준계약서를 만든다고 해도 불법으로 영업하던 대부업체들이 당장 따라주지는 않을 것이고, 연예인 표준계약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할 수는 없다. 조금씩 개선을 하자는 것이다. 일부 대형 대부업체가 표준계약서를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서서히 대부업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믿는다."
- 공정위가 이동통신요금 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선 방송통신위원회가 꽤 불쾌해 하는 모습이다.
"방통위의 권한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동통신 업체들에게 불공정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를 한 것이다. 작년에도 보험료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금융위원회와 마찰이 있었지만 원만히 해결됐다.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방통위에 협조를 구하겠다."
- 금융 전문가로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금융감독기구 개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금융의 속성을 볼 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분리, 국내금융(금융위원회)과 국제금융(기획재정부)의 분리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백 위원장은 금융위ㆍ금감원의 통합, 국내ㆍ국제금융의 통합이 바람직하다는 뉘앙스였지만 타 부처 권한 침범을 의식한 듯, 더 이상 말을 아꼈다)"
- 민영 의료법인 도입을 둘러싸고도 부처간 의견 차이가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료에도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쟁은 도입하되 낙오자를 구제하려는 정부의 역할이 뒷似㏊홱摸?부작용도 해소할 수 있다."
- 앞으로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남은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공정위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장의 기본적인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상호출자제한 같은 규제는 임기 내에 절대 풀지 않을 것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사진=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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