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봄 꽃이 피고 졌다. 그러나 이때는 또 봄을 느낄 새도 없이 우울이 번져가는 시기이다. 학생들은 중간고사라는 작은 전쟁을 치른다. 청소년과 부모들의 정신과 상담이 늘어나고, 누가 어디서 뛰어내렸다는 뉴스를 걱정하는 때이기도 하다.
나도 학부모이므로 10대들이 삼중ㆍ사중으로 압박받는 현실을 함께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시험이라는 제도 속에서 자신의 '입'을 갖지 못한 세대이기에,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쉽지 않다. 다만 짐작하고 있었을 뿐이다.
'광기'의 주인공은 어른들
예리한 젊은 작가 김사과의 소설에서 우리가 키우고 있는 10대들의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충격적이고 불쾌하고 우울했다. 소설 <미나> 는 한 여고생이 친구를 살해한 이야기다. 10대를 지나가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기성세대가 기대하는 것은 정답이 있는 수학시험 문제를 열심히 풀면서 교활하고 영리하게 비껴가는 것이다. 주입식의 수동적 학습을 도무지 견딜 수 없다면, 자살 아니면 살인의 공간이 기다리고 있다. 미나>
소설 속 여고생은 자살 대신 살인을 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를 들어서. 모두가 말하는 것. 예를 들어서. 친구를 짓밟고 올라서라. 숨이 막혀온다. 이런 건 다 비유잖아? 아무런 힘도 없이. 나는 진짜가 필요했어…. 진짜 밟는 거랑 비유적으로 밟는 거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이제 나는 알았어. 차이가 없어. 이것 봐. 아무 느낌도 없어. 이렇게 니가 죽었는데도 나는 아무 느낌도 안나. 죽어 있는 너는 살아 있는 너보다 더욱더 안 느껴져. 그리고 그건 아주 잘 된 일이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우리 10대들은 좀 다르게 행동했다. 중간고사 중에도 거리에 나갔고, 시험이 끝나자 더 많은 수가 모였다. 그들은 "미친 소 반대, 미친 교육 반대"를 외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노래했다. 그리고 자기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제 보수적인 기성세대는 그들을 한 방송 프로그램의 '거짓'에 속아 '광기'에 사로잡혔던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
10대의 입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흙탕물까지 뒤집어씌우는 격이다. 시간이 직선적인지 순환적인지도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것이 과학의 세계이다. 현 시점에서는 누구도 광우병의 '진실'을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와 교육은 충분히 비정상적이다. 아이들을 학교와 학원, 일제고사와 경시대회, 올림피아드와 토플시험으로 내몰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광기'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그래도 희망의 작은 등불을 찾고 싶다. 공교육을 혁신하고 아이들을 의욕있는 자립적 인간으로 육성하겠다는 약속을 내건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곧 취임한다. 올해 8조 7,000억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막강한 자리라지만, 현실의 벽은 매우 높을 것이다.
경직성 예산 등을 빼고 나면 공약 사업에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400~500억원 정도라고 한다. 결국 돈을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학생의 인권을 신장하는 일, 학부모ㆍ교사ㆍ지역사회가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일, 부분적이나마 교장 공모제를 실시하는 일 등, 현장 분위기를 바꾸는 씨앗을 심기 바란다.
공교육 개혁이 희망의 등불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이 거셌지만,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내놓은 사교육비 절감 대책에도 주목하고 싶다. 과다한 사교육비나 학습시간은 부유층까지 포함한 전 국민의 고통이 되고 있다. 외국어고 입시제도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도 이제는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주변의 지인들과 이야기해보면, '특단의 대책'을 바라는 목소리들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일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아이들인 10대를 위하여 김상곤 교육감과 곽승준 위원장의 성공을 빈다.
이일영 한신대 사회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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