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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민들레 피어나면 어김없이 캐가시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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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민들레 피어나면 어김없이 캐가시는 할머니

입력
2009.05.06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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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따스한 봄 입니다. 울타리처럼 늘어선 나무에 별빛 미소를 담뿍 머금고있던 개나리가 파릇한 작은 잎을 피워 올리고, 눈물 같은 목련이 눈 깜짝할 사이 하얗게 뚝뚝 떨어지고 나면, 제가 사는 아파트 주변엔 노란 민들레가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길쭉한 이파리 사이로 꽃대를 밀어 올리고 피어나는 민들레는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겐 작은 희망입니다. 그러나 우리 동네 민들레 할머니가 나타나면 채 만끽할 겨를도 없이 그 아름다움을 모조리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올해도 봄볕과 함께 민들레가 나들이를 나올 즈음에 할머니는 어김없이 커다란 부대자루와 호미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뿌리째 뽑혀 삶을 마감한 민들레는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진 시멘트 바닥에 누워 그야말로 꽃다운 청춘을 시들시들 말리고 있습니다. 굽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민들레를 캐가시는 할머니를 둘러싸고 여름 날 나무잎새처럼 소문은 무성해져만 갔습니다.

민들레를 말려 한약방에 판다느니, 삶아 무쳐 먹는다느니. 달인 물을 마신다느니…, 걔 중엔 "노인네가 욕심도 많지 얼마나 오래 살려고 꽃까지 삶아 먹는대"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예쁘게 꽃망울을 터뜨릴 즈음 잔인하리만치 뿌리째 캐어가는 할머니를 원망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며칠 전에도 할머니는 민들레를 캐고 계셨습니다. 민들레를 캐는 이유보다도 민들레가 어떤 특효약인지가 더 궁금했던 나는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할머니, 민들레가 어디에 좋은데 매일같이 캐러 다니세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퀭한 두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알아듣지도 못 할 말로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십니다. '아니,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화를 내신대? 알려주기 싫으면 그만 둘 일이지, 나 원 참….' 나는 할머니의 예상치 못한 퉁명스러움에 기가 질려 자리를 얼른 피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야 할머니의 노여움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민들레 달인 물이 간경화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아들에게 일년 내내 그 물을 마시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한 철만 돋아나는 민들레를 보이는 대로 캐어 말리셨던 거지요. 할머니는 시꺼멓게 타 들어가는 자신의 속은 헤아리지 못한 채 사람마다 재미 삼아 묻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시기도 힘에 부치셨던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아들의 생명에 불을 지피고 계셨던 겁니다. 허리를 낮춰야 아름다움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꽃, 오만하지않고 겸손하게 사는 법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고 민들레는 키도 크지 않는가 봅니다. 민들레는 스스로 씨를 뿌리고 혼자 자라서 꽃을 피우고 마침내는 사람의 목숨까지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더냐'고 묻는 안도현님의 싯귀가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의 옆 자리에 아드님이 오랫동안 화사한 민들레 꽃으로 피어 있기를 간절하게 빌어 봅니다.

서울 노원구 중계1동 - 이홍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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