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던 미네르바가 1심 판결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그 부당성이 지적되었고 여당 내에서조차 비판이 있었으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구속이었던 만큼 당연한 귀결이다. 검찰은 항소하겠다고 으름장이지만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유무죄를 떠나 이미 100일 이상을 구금한 걸로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으니 일단 항소를 해서 시간을 벌겠다는 뜻인 것 같다.
국민이 인정 않는 '명예'
그런 검찰이 이번에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사 PD와 작가 4명을 긴급 체포했다. 이춘근, 김보슬 PD에 이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강제 조사를 받게 된 셈이다. 그런데 그 혐의라는 게 쇠고기 협상에 참여한 정부 대표와 농림수산부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이란다. 공직자 두 사람의 명예는 언론인 6명을 강제 연행하고 방송사 압수수색을 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모양이다.
개인의 명예를 존중하는 자세는 경찰도 뒤지지 않는다. 자살한 신인 여배우로부터 부당한 접대를 받은 의혹이 제기된 언론사 간부는 끝내 신원이 공개되지도 않은 채 무혐의 처분되었다. 그런데도 '해당 언론사'는 자신의 실명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도대체 명예가 뭐기에 저 난리일까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더니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라고 한다. 명예의 본질은 세상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물론 법에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만, 공표한 내용이 사실이고 공익에 관한 것일 때는 처벌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잘못된 협상으로 엄청난 촛불의 저항을 불러일으킨 공직자의 명예는 보호할 가치가 있을까. 그렇게 지킨 명예는 과연 누가 인정해줄까. 가장 영향력 있다고 자부하는 신문사 경영인에게 제기된 의혹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고소를 당해야 한다면, 그리고 경찰이 발 벗고 나서 그 명예를 지켜주어야 한다면 그 신문이 과연 공정한 언론일 수 있을까?
MBC와 정부의 싸움, '해당 언론사(여기서까지 실명을 말하지 못하는 필자의 비겁함을 꾸짖어 주시라)'와 국회의원의 싸움이 모두 겉으로는 명예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두 사건의 본질이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려는 권력의 의지라는 사실을 깨닫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은 공직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잡아들이고, 호의적인 언론은 그 경영인의 개인적 비리 의혹마저 명예를 내세워 감싸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민초들은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건 직감으로 안다. 3월 31일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응답자의 72.3%가 담당 PD의 체포가 지나치다고 답해 문제없다고 답한 21.1%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4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6%가 장자연씨 사건과 관련해 접대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에 대한 수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어도 쇠고기 협상에 나섰던 공직자나 익명의 장막 뒤에 숨은 언론사의 명예를 지켜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는 공직자와 언론사 사주의 명예를 위해 법이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법 남용은 국민의 명예 훼손
이 세 사건에는 모두 언론이 관련되어 있다. 미네르바는 인터넷의 풀뿌리 언론을 상징하고 은 방송을, '해당 언론사'는 신문을 대표한다. 정부는 인터넷에서 정부 비판 글을 쓴 사람은 끝까지 추적해 구속까지 시키면서도 의혹이 있는 특정 언론사 간부에 대해서는 신분을 감추려고 저렇게 애쓰는 이유가 도대체 무얼까. 무죄 방면될 사람을 잡아 가두고 비판적 보도를 범죄로 몰아가는 검찰이야말로 국민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 · 인문의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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