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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퇴임후 첫 산문집 '오래된 마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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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퇴임후 첫 산문집 '오래된 마을' 출간

입력
2009.05.0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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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월 빠르지요. 꽃이 피는 살구나무 아래 앉아 문득 고개 들었더니 서른이었고, 살구나무 아래 앉아 아이들이랑 살구 줍다가 일어섰더니 마흔이었고, 날리는 꽃잎을 줍던 아이들 웃음소리에 뒤돌아보았더니 쉰이었습니다. 학교를 떠나며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살구나무를 바라다보니, 어느새 내 나이 머리 허연 예순입니다."

섬진강 터줏대감인 시인 김용택(61)씨의 산문집 <오래된 마을> (한겨레판 발행)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 그가 평생 살아온 진메마을 이야기다. 김씨가 38년간 근무했던 덕치초등학교에서 지난해 8월 정년퇴임한 후 선보이는 첫 산문집이다.

홍안의 청년이었던 그의 머리 위에 서리가 내렸듯 세월은 '삼십칠 명의 장정들과 삼십칠 명의 아낙네들이 삼십칠 채의 지붕 아래 살던' 고향마을을 '동네를 합쳐도 열네 집에 스물여덟 명'만 남은 늙고 쇠락한 마을로 변모시켰다.

그 변화를 인정해야 하는 시인의 심경은 짠하지만, 애틋함은 더욱 깊어졌다. 그는 거침없이 고백한다. "내가 사는 마을 산과 강은, 그리고 거기 사는 오래된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내 몸과 같습니다."

이 말 하다가 저 말 하고 저 말 하다가 또 엉뚱한 말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마을사람들, 용돈을 조금 쥐어드리면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형수님, 동네 일이라면 모두 소상히 알고 있는 큰집 형님, 저녁 무렵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앞산의 나무들, 논두렁가의 하얀 토끼풀꽃과 붉은 자운영꽃. 언제봐도 아름다운 고향 마을의 풍광과 가난하지만 정다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가난한,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을 매만지는 손이 있고, 그 아름다운 손으로 세상을 지키는… 그 오래된 작은 마을 사람들의 변하지 않은 공동체적인 삶이 인류의 미래다"라고 말하는 김씨의 목소리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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