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출한 A(15)양은 대전 용전동의 모텔 밀집촌에서 친구 5명과 함께 혼숙을 하던 중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의 강요로 낙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임신한 몸으로 원조교제까지 하던 A양은 지난해 11월 청소년보호중앙점검단에 적발돼 가출청소년 쉼터로 보내졌다. 그러나 일주일을 못 버티고 쉼터를 떠난 뒤 지금까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지난해 집을 나와 남자친구 등 3명과 함께 살고 있다는 B(16)양은 최근 서울시 이동청소년쉼터를 찾았다. B양은 "오빠(남자친구)가 돈을 벌어오라고 윽박질러 하는 수 없이 '삼촌'들을 만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B양 역시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여학생들의 가출이 급속히 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상당수가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해 가출한 남자 청소년들과 위험한 동거를 시작했다가 뜻하지 않은 임신과 낙태의 수렁에 빠지거나 강요에 의해 성매매에 내몰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가출청소년 중 여자는 2006년 5,984명에서 2008년 1만303명으로 불과 2년 새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남자가 같은 기간 3,406명에서 5,024명으로 늘어난 것과 비교해도 빠른 증가세다. 특히 지난해 '청소년유해환경 종합실태조사'에서 가출 청소년의 30% 정도가 혼숙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을 정도로, 혼숙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이다.
이동청소년쉼터의 김기남 팀장은 "동거를 하다 이동쉼터를 찾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선 신림동과 수유역 부근 모텔 밀집지역 등이 이들을 받아주는 소위 '잘 뚫리는 곳'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 서너 명이 각자 20만~30만원씩 내서 서울 변두리 모텔에 한 달 가량 장기투숙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수유역 근처 모텔가에서는 앳된 남녀 청소년들이 모텔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모텔을 나와 편의점을 이용하던 한 남학생은 "집 나온 친구 3명과 이 곳에 방을 잡고 산 지 보름 정도 됐다"고 말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가출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마련하다 돈이 떨어질 경우 동거하는 여성을 성매매나 절도 등 범죄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수원에서 가출 여중생을 폭행한 뒤 원조교제를 시킨 가출 청소년 이모(18)군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경기 성남에서 발생한 가출청소년 유모(16)양 살해 암매장 사건도 동거하던 이모(18)군 등의 소행이었고, 인터넷에서 물의를 일으킨 '여중생 알몸 폭행 동영상'도 가출 청소년들 사이에서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위험한 동거와 강요된 성매매는 미혼모 증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전국 8개 미혼모 시설을 운영 중인 대한사회복지회 관계자는 "청소년 미혼모의 30% 정도가 가출 상태에서 임신한 경우"라고 말했다.
가출 청소년들이 쉽게 동거를 택하는 것은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크게 부족한 것도 한 원인이다. 부모의 이혼이나 폭력, 경기불황에 따른 가족 붕괴 등으로 가출 청소년들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의 숙식을 지원하는 장ㆍ단기 쉼터의 수용인원은 현재 800명(전국 77곳)에 불과하다.
성남 새날청소년쉼터의 김은영 소장은 "가출 청소년들이 머물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직접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아웃리치(out reach)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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