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지만 사람속과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게 냉장고 속이다. 나는 정말 우리집 냉장고의 심중을 모르겠다. 분명 장을 봐온 사람도, 반조리 상태로 조리해 냉동실에 넣어둔 사람도 나인데 말이다. 단단하게 얼어 있는 크고 작은 검은 비닐봉투 속에서 예상치 못한 것이라도 튀어나올까 겁이 날 때가 있다. 저 깊은 곳에는 둘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들어가 케케묵은 음식이 분명 있을 것이다.
기괴한 어떤 소설의 소재는 이렇게 냉장고 속을 보다 떠올랐다. 사둔 걸 잊고 똑같은 제품을 사오는 실수도 저지른다. 매일매일 냉장고 속을 체크하고 청소하기에 냉장고 속에 든 물건이 너무 많다. 주부들의 바람처럼 냉장고도 커지고 김치와 와인 전용 냉장고에 냉동 전용 냉동고까지 줄줄이 출시되었다.
왜 이런 냉장고는 생산되지 않는 걸까. 지금처럼 속 깊을 게 아니라 문만 열면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속 보이는 냉장고, 그럼 지금처럼 냉장고 문 바로 앞의 음식들만 먹고 속의 것을 잊어버리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가사일이 취미인 한 남자 작가의 충고가 떠오른다. 자신은 절대 대형 마트에 가지 않는다 했다. 싸게 사오는 듯싶지만 대용량 판매라 못 먹고 버리는 것이 태반이라는 것이다. 두부 한 모, 시금치 한 단, 동네 슈퍼를 애용한다고 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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