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재보선은 참으로 희한한 선거였다. 정당이나 정책은 없고 당 내분만 두드러져 정치혐오증을 부추겼다. 그렇잖아도 취약한 정당정치의 토대 자체가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올 정도다.
당초 4ㆍ29 재보선은 이명박 정부 1년에 대한 평가,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정운영의 방향을 가다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각각 '경제 살리기'와 '이명박 정부 심판'을 앞세우며 정책으로 심판받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말 뿐이었다. 애초부터 한나라당 내부의 관심은 온통 친이ㆍ친박 간 일전이 예고된 경북 경주에 쏠렸다. 겉으론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향후 당내 역학구도에 미칠 영향 때문에 양측 모두 사력을 다했다. 선거전 초반에 불거진 친박 무소속 후보에 대한 사퇴 종용 논란, 당 후보에 대한 친박 의원들의 철저한 외면 등은 친이ㆍ친박 갈등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민주당 역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공천 문제로 자중지란에 빠졌다. 정 전 장관의 전격적인 고향 출마 선언, 지도부의 공천 배제 강행, 정 전 장관의 '무소속 연대' 추진, 지도부의 복당 불허 방침 천명 등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여기에 박연차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겹쳐지면서 민주당의 정권 심판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외견상 정책대결이 펼쳐지는 듯하던 인천 부평을은 과열 양상이 빚어지면서 그야말로 빈 공약(空約)의 경연장이 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역 최대 현안인 GM대우 문제를 표로 연결시킬 욕심에 경쟁적으로 수천억원대의 무리한 지원책을 남발했고, 정부는 투표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돌연 2,400억원의 지원책을 내놓아 관권선거 논란을 자초했다.
이번 재보선의 당 내분현상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에 특정 계파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면서 동시에 타 계파에 대해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벌써부터 19대 총선 공천, 차기 대선후보 경선 등에 대비해 유력 정치인의 그늘에 안주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특히 "정치권이 정체성과 노선을 기반으로 재편되지 않는 한 이 같은 퇴행적 정치행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각 당 내부에서 계파(系派)가 아닌 정파(政派)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한 정당에 둥지를 트는 식으로 지금의 정당들이 사실상 재편돼야 한다는 얘기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정당인이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게 용인되는 정치풍토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본인의 이름과 사진을 내걸고 친이ㆍ친박 갈등을 선거에 활용한 무소속 후보를 용인한 점,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자신을 대선후보로 만든 당을 향해 '친노ㆍ386 당'이라고 공격한 점 등을 예로 들었다.
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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