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새벽 4시께 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임진강변. '자유교 선단' 어민 4명이 물 안개 자욱한 강에 배 2척을 띄웠다. 밤새 강에 쳐놓았던 그물 20개를 걷어올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확'에 나선 어민들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물 하나를 손으로 훑으니 사위가 캄캄한데도 희뿌옇게 올라오는 갯벌 진흙이 눈에 띄었다. 갯벌에 묻힌 그물을 전기모터로 힘겹게 끌어올려 보지만, 물고기보다 진흙덩이가 더 많이 걸려 나왔다. 일부 그물은 너무 깊이 묻혀 억지로 끌어올리려다 찢겨 나가기도 했다.
오전 8시까지 4시간 동안 배 2척이 끌어올린 어획량은 실뱀장어 300g과 숭어, 붕어, 잉어 등 민물고기 20여마리. 잘 받아야 140만원 어치란다. 배 한 척에 실뱀장어 1㎏, 민물고기는 헤아릴 수도 없이 잡히던 5년여 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그래도 명색이 '꽃사리'(1년 중 가장 어황이 좋은 시기)인데…." 문호곤 파주 어촌계장은 말을 맺지 못한 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올해 꽃사리(4월18일~5월3일)가 지나고 나면 사실상 10월까지 손을 놓고 있어야 한다. 1년 벌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꽃사리 어획량이 이 지경이니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파주 지역에 172명(7개 선단 86척), 연천에 28명(28척) 등 임진강 유역에서 고기잡이 하는 어민들의 주름살이 늘고 있다. 임진강이 갯벌화 하면서 어획량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 씨가 말랐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자유교 인근의 경우 10m에 달하던 수심이 최근엔 제일 깊은 곳이 4~5m에 불과할 만큼 얕아졌다. 갯벌이 강변에 넓게 형성되면서 배가 강으로 드나들 때도 강 가운데에 말뚝을 박고 굵은 쇠줄을 배에 연결한 뒤 그 줄을 전기모터로 감고 풀어야 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어진 오랜 가뭄으로 강 유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토사가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채 강바닥에 쌓이고 있는 탓이다. 밀물 때 바다 개흙이 쓸려 올라오면서 갯벌화 현상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황강댐을 지어 물을 가두고, 우리나라도 황강댐 방류에 대비해 군남댐과 한탄강댐을 건설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강 생태계도 크게 바뀌고 있다. 참게와 뱀장어, 다슬기, 붕어, 노치 등 민물 어종이 주로 잡히던 것이 최근에는 칠게, 모래무지, 황새기 등 바다 어종이 잡힌다고 했다.
심지어 깊은 바다에서나 볼 수 있던 대구가 이곳에서 잡히기도 했다. 이날도 바다물고기를 먹고 사는 갈매기 5~6마리가 눈에 띄었다. 임진강의 염분 농도가 크게 오른 탓이다.
어민들의 더 큰 고민은 '황복 흉년'이다. "물살 센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육질이 쫄깃쫄깃해진다"는 임진강 황복은 참게와 함께 임진강 최고의 명물로 꼽힌다.
황복은 보통 4월 20일부터 5월 20일까지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임진강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오는데, 올해에는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바다와 인접한 강화도 인근에서 몇 마리 건져올렸을 뿐이란다.
황복은 1㎏당 8만~10만원을 호가해 임진강 어민들의 주 소득원이다. 배 1척 당 3,000만원 가까운 소득을 올리던 것이 지난해에는 2,00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올해는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황복의 주요 먹이인 다슬기가 급감한 탓이다.
어민들은 댐 공사에도 원성을 쏟아냈다. 연천의 한 어민은 "한 해 20톤씩 잡히던 다슬기가 올해부터는 자취를 감췄다"면서 "깨끗한 물에만 서식하는 다슬기가 안 나오는 것을 보면 댐 공사로 시멘트 등 건설자재로 인해 물이 오염된 탓이 큰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강 유역의 민물 매운탕 집들도 비상이 걸렸다. 파주의 한 매운탕집 주인은 "민물잡이를 하면서 매운탕집도 운영하고 있는데 고기가 안 잡혀 장사를 못할 지경"이라며 "곧 임진강 황복을 찾는 분들도 많을 텐데 물량이 너무 달려서 큰 일"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와 파주시, 연천군은 1997년부터 최근까지 약 80억원을 투입, 황복과 참게, 메기 등의 치어를 방류해 민물 어종 살리기에 나섰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일정한 강류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게 어민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이날 '자유교 선단' 어민들은 잡은 물고기들을 옮겨 담다가 실뱀장어 한 마리가 바구니 밖으로 '탈출'하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심재현씨는 "요즘같이 어황이 안 좋을 땐 3㎝ 길이의 실뱀장어 한 마리도 '이삭 줍는' 심정으로 챙기게 된다"며 뱃전에 떨어진 실뱀장어를 조심조심 주워 담았다.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