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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불을 끄고 별을 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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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불을 끄고 별을 켜자'

입력
2009.05.0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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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에 갔다. 졸다 깨보니 산들이 밤하늘보다 더 짙은 어둠으로 늘어서 있다. 달빛에 비춰진 기슭의 나무들이 이부로 삭발한 중학생의 머리처럼 성기다. 심야의 고속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고, 도로가 아니었으면 거의 인적이 없었을 심산유곡의 밤은 장엄하다. 이런 어둠을 본 것도 아주 오랜만이다.

도시 불빛에 잃어버린 어둠

그러나 지방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어둠은 이내 사라졌다. 터미널 주위의 유흥가는 색색의 불빛들로 현란하고,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보는 아파트단지의 상가들은 심야에도 불을 끄지 않는다. 새롭게 만든 간선도로의 가로등도 눈부셔 자동차의 라이트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런 사정은 서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마다 색색의 조명이 비춰진다. 새로 지은 아파트는 장식 조명도 화려하다. 건물 위 대형 전광판들은 끊임없이 빛들을 하늘로 쏘아 올린다. 도시의 야경이 화려하다는 것은 그만큼 어둠이 없어졌다는 걸 뜻한다. 그래서 그런지 TV 드라마 속의 도시 거리들도 대낮을 방불케 한다. 심지어 사극 속의 산길도 정체모를 불빛들로 대낮처럼 밝다. 촬영을 위해 최소한의 조명은 필요하다지만 TV 속에서도 어둠과 밤은 사라지고 있다.

생명의 시작은 어두운 어머니의 자궁 속이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하루의 반은 밝고 반은 어둠 속에 있도록 진화해 왔다. 최근의 도시 개발로 인한 이 밝음과 어둠의 균형 상실은 어쩌면 중력의 혼돈과 같은, 우리가 사는 물리적 원칙에 근본적인 혼란이 될지도 모른다. 이미 새들과 개구리, 거북이들이 흘러 넘치는 도시의 불빛들 때문에 생태학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인간이라고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한 지역의 유방암 발생 비율과 지역의 야간 조도(照度)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도 있었다.

지금까지의 개발이 전기를 생산하고 그로 만들어진 빛들로 밤을 지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었다면, 미래의 개발은 어둠을 지키고 회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기오염만이 문제가 아니고 어둠의 오염도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의 중산층 주택가는 가로등을 거의 만들지 않는다. 집 안에서도 천정에 붙은 오버헤드 라이트보다는 스탠드나 램프 등 부분 조명을 많이 쓴다. 어둠은 두려운 적이 아니고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집이다. 어둠이 없으면 밝음도 없는 것이다.

국제밤하늘협회(IDA: International Dark-sky Association)의 중심구호는 '불을 끄고 별을 켜자'이다. 공중으로 분사되는 빛들은 우리에게서 밤하늘도 앗아갔다. 도시의 어린이들에게 별빛은 이미 천문대에서 천체망원경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다.

별을 보고 운명을 예감하고 별을 보고 길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면 별빛의 상실은 방향의 상실이다. 별들과 은하수로 가득 찬 막막한 밤하늘을 보지 못하고는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가늠할 수 없다. 지구는 우주 전체가 아니라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들 중 하나라는 진실이 밤하늘을 보지 않고 어떻게 체감하겠는가.

밝음과 어둠의 균형 회복을

'먼 곳에서 불빛이 하나 반짝반짝했다'라는 구절은 한국의 옛날이야기에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 중 하나이다. 밤길에 방향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가 사람이 사는 인가를 발견했다는 뜻이다. '칠흑 같은 밤'이란 옷칠처럼 두꺼운 어둠이 겹겹이 내려앉은 밤을 뜻한다.

별빛도 달빛도 없이, 아예 빛의 원료는 하나도 없이, 눈을 떠도 감은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완전한 어둠을 말한다. 요즘의 아이들에게 이 말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 곳의 불빛은 주유소이고, 칠흑 같은 밤이라도 핸드폰 불빛으로 길을 밝힐 수 있다고 하지 않을까.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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