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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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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들

입력
2009.05.02 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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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마차도

저녁은 죽음으로 들어가네,

항복하면서 꺼져가는 화덕처럼.

저기, 산들 위에,

몇몇의 잉걸만이 머물고 있네.

그리고 하얀 길 위에 꺾여진 저 나무는

연민 앞에서 흐느끼네.

상처난 둥지에 붙어있는 두 개의 가지, 그리고

가지에 달려있는 검고도 바래진 잎 하나.

그대여 우는가? 아득한 저 편 황금빛 포플라 나무 사이에는,

사랑의 그늘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오.

방랑자여, 그대의 흔적들만이

길이지,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오.

방랑자여, 길은 없다네,

길은 가면서 다만 생겨나는 거지.

가면서 생겨나는 길,

돌아보오, 좁은 길이 보일 터, 다시는

그대가 디딜 수 없는 그 길이.

방랑자여 길은 없다네,

다만 바다를 지나가는 포말일 뿐이라네.

● 안토니오 마차도(1875~1939)는 스페인 시인이다. 그는 공화당을 지지하다 공화당이 패하자 프랑스로 망명길에 오른다. 프랑스 국경을 몇 킬로 앞에 두고 그는 쇠진해서 죽었다고 한다. 그를 동행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죽고 난 사흘 뒤에 아들의 뒤를 이었다.

단순하나 아름다운 언어로 카스티야 지방의 자연을 노래한 것으로 유명한 이 시인은 그 당시 스페인의 정치 역사에 찢겨 죽음에 이르렀다. 20세기가 낳았던 많은 시인들의 비극적인 죽음에는 자주 정치 역사의 비극이 들어있다.

자신의 흔적으로 길을 만들고 그 길이 지워진 것을 목격했던 시인이 어찌 마차도뿐이랴. 카스티야 지방의 들을 노래하면서 결국은 20세기 인간의 운명을 노래했던 이 시인의 시를 읽으며 시인과 정치, 시인과 사회, 그리고 시인으로 감당해야 하는 굴욕과 영광을 생각한다.

굴욕은 미천한 정치사가 안겨준 것이지만 영광은 시인의 고향이 안겨준 것이다. 석양이 내리는 고향의 들판에서 부르는 노래. 이 노래 속에 시인이 가질 수 있는 영광의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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