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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4일 개봉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홍상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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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14일 개봉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홍상수 감독

입력
2009.04.28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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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영화제 심사를 위해 충북 제천시를 찾는다. 그 곳에서 후배 부상용(공형진)과 해후하고, 그의 집에 초대돼 얼큰한 술자리를 벌인다. 아침에 일어난 경남은 상용 아내(정유미)의 알 수 없는 오해로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상용이 던진 돌에 얼굴을 다친 채 황급히 서울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뒤 경남은 특강을 위해 제주를 찾는다. 학생들과의 뒤풀이 자리서 그는 학교 대선배인 유명 화백 양천수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가 자신이 한때 연정을 품었던 후배 고순임(고현정)임을 알게 된다. 순임을 만난 경남은 천수의 집서 살색 애정행각을 벌이다 동네 총각에게 들켜 망신살이 뻗친다.

5월 14일 개봉하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한 남자의 여자와 얽힌 씁쓸하고 우스꽝스러운 고군분투를 다루고 있다. 별 볼일 없어보이는 일상에서 별일을 찾아내는 현미경 같은 홍 감독의 연출이 차가운 웃음을 자아낸다.

24일 밤 서울 압구정동의 한 극장에서 홍상수 감독이 관객과 나눈 법어와도 같은 대화는 그의 신작과 최근의 영화세계를 가늠케 한다.

영화는 구경남의 잇따른 여난을 좇으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과 사물과 현상에 대해 잘 안다고 여기는 인간의 착각과 빗나간 욕망을 스크린에 투영한다. 비슷한 듯 별개인 두개의 에피소드가 서로를 포옹하며 더 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존재형식이 홍 감독의 전작 '생활의 발견' 등과 궤를 같이 한다.

홍 감독은 "영화의 제작 계기는 별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다녀본 곳을 촬영장소로 삼는다. 최근 다녀온 제천은 호수로 유명한 데 땅이 물을 막고 있는 곳이다. 반면 얼마 전 갔던 제주는 물이 땅을 가두고 있다. 두 곳 이름의 첫 자도 똑 같이 제다. 이런 아무 것도 아닌 이유를 바탕으로 짧은 기간 동안 제천과 제주를 여행하는 남자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

그는 출연자 캐스팅도, 촬영 과정도, 촬영 대상의 선택도 직감과 즉흥성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화백 양천수를 연기한 무명 탤런트 출신 문창길은 연출부에서 일하는 딸을 보기 위해 제천을 찾았다가 홍 감독 눈에 들었다. 영화 속에서 문득 등장하는 수영장의 청개구리와 상용의 집 마당의 애벌레도 촬영장에서 즉석 '캐스팅'됐다.

"내 작업 방식이 좀 특이하다. 시나리오 없이 20쪽 분량의 요약분만 가지고 촬영에 들어간다. 아침에 그날 찍을 분량의 대사 등을 쓴 뒤 촬영하고 그날 저녁 가편집한다. 그날그날 몸에서 일어난 생각을 받아들이고 결정해 영화를 찍는다. 예를 들어 청개구리와 애벌레 장면은 '자연을 보면 인간사가 다 우스워진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바로 넣었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해변의 여인'으로 이미 손발을 맞춘 김태우도 감을 중시하는 홍 감독의 연출방식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배우를 보면 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 맥을 중심으로 나에게 축적된 것들을 섞으면서 조각가가 돌을 쳐내며 안에 숨겨진 형상을 찾듯 인물을 만든다. 김태우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하지만 흥행작은 없는 영화감독 구경남, 홍 감독의 분신은 아닐까. 홍 감독은 "등장인물을 통해 자연인으로서의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구경남과 자신을 명확히 구분 지었다.

"등장인물과 내가 거리를 두지 않으면 그 영화는 연설문이 된다. 내가 심정적으로 (영화에) 구속될 수도 있다." 그는 구경남이 '다음엔 꼭 200만 관객 영화를 만들 거야'라고 다짐하는 장면도 "나의 소망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나는 영화 만든 지 좀 오래 되서 내 영화 관객 숫자가 어느 정도 될지 잘 안다. 나라면 200만명을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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