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겠다."
용산 참사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책임자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 정비라며 한 말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도 앞 다퉈 "현실적인 보상비 책정이 이뤄지도록 하겠다", "조합과 세입자간 갈등을 정부가 중재토록 하겠다" 며 재개발 관련 법안을 정비하겠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용산 참사 100일이 다 되어가는 27일 현재. 정부와 정치권의 제도 개선 약속은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참사 직후 제출됐던 몇몇 재개발 관련법안은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김희철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한 건만 최근 국회 소위를 통과했는데, 이마저도 심의과정에서 순환개발 등 알맹이는 쏙 빠졌다.
사건이 터지면 잠시 관심을 보이는 척 하다가 잠잠해지면 '강 건너 불구경'하는 정부와 정치권의 구태가 여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 사이 재개발 갈등은 곳곳에서 폭발 직전에 이르고 있다.
서울에서만 재개발이 예정되거나 진행 중인 지역이 550여 곳. 이 중 상당수가 조합과 세입자간 갈등으로 제2, 제3의 '용산 참사'로 비화할지 모르는 화약고 같다.
당장 '용산 참사'가 일어난 용산4구역 남일당 건물 맞은편인 서울 용산역 앞 제2ㆍ3 도시환경 사업구역.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거긴 지금 폭풍전야다. 주민들이 망루 쌓을 높은 건물 찾고 있다고 내놓고 말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해 이미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나 보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기대보다 낮은 보상금에 강경 대응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27일 현재 조합측과 보상비 합의를 마친 세입자는 112명으로, 전체 주거ㆍ영업 세입자의 15%에 불과하다.
용산구 서부이촌동 일대 아파트 벽면에는 '사유재산 강탈하는 서울시장 물러나라', '독재개발 결사 반대' 등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2007년 서울시가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 이 지역까지 포함시키면서 지역 주민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 뿔난 주민들은 지난달 용산구청장 비서실을 점거, 농성하다 해산을 요구하는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동작구 상도4동 재개발 지역도 '(철거)용역사 각오하라', '목숨 걸고 끝까지 투쟁한다'는 플래카드로 가득하다. 이 곳 역시 강제철거를 앞두고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이주비를 요구하는 철거민과 건설사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서대문구 북가좌동 가재울 뉴타운 3구역과 왕십리 뉴타운 2구역 등 뉴타운 지역 역시 세입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철거가 미뤄지는 등 표류하고 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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