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화이트 지음ㆍ김명남 옮김/사이언스북스 발행ㆍ416쪽ㆍ2만원
종교적 통념을 뒤집은 갈릴레오의 진실은 무엇일까. 종교재판정에서 최후 진술을 통해 이단적 의견의 철회를 맹세하고 목숨을 건진 그의 본질은 교회의 적일까, 과학의 순교자일까. 그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과연 진실일까.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자연계의 근본적인 법칙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던 일을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며 과학적 세계관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2009년은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자 '세계 천문의 해'이기도 하다. 갈릴레오는 완전히 복권된 것일까.
이 책은 퀘퀘한 문서보관소에 묻힌 진실을 찾아 과연 교회와 갈릴레오는 화해한 것인지를 묻고 있다. 저자는 400여년 동안 바티칸 비밀문서 창고에 잠자고 있던 갈릴레오 재판의 비밀을 통해 그 답을 찾아간다. 그 요체는 어두운 거래와 협상이었다고 저자는 1999년 공개된 갈릴레오 문서(갈릴레오에 대한 3쪽짜리 문서라는 듯에서 'G3 문서'라 불린다) 등을 통해 실증한다. 또 그를 화형대에 보낼 생각으로 재판 당시 교황청에 보관돼 있던 관련 문건들의 분석도 주요 논거로 제시된다.
저자에 따르면 갈릴레오 재판은 일종의 쇼였다. 교회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과학 이론을 고집할 것인가, 덜 위험한 천동설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것인가를 둔 진실 게임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역사의 두께는 때로 진실보다 강하다. 현실적으로 지동설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던 교회의 선택은 교묘했다.
1992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동설에 대해 "상호 동의하는 결론을 얻어야 한다"며 공식 입장을 천명, 갈릴레오와 당시 교황 사이의 갈등이 은유적 '신화'였던 양 묘사하도록 한 것이다. 그것으로 교회가 과학을 박해했던 일 자체를 덮어버리려는 의도였다. 교황청은 그 해 갈릴레오에 대한 사면ㆍ복권을 선언했지만,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 책은 실증적 문건들을 통해 이 같은 갈릴레오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갈릴레오의 삶에 대한 생생한 서술에 있다. 독신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애인과 그녀가 낳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았던 이야기, 고집스러운 어머니와 방탕한 동생에게 시달렸던 사연, 학자로서의 야심을 잃지 않으며 반대자들을 조롱할 수 있었던 문장력과 유머감각 등 갈릴레오의 숨겨진 개인사는 이 책의 별미다. 또 그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정치적 분열과 갈등 상황 에서 슬기롭게 운신해 가는 모습 등은 자연과학자의 삶을 그린 기존의 책에서 보기 힘든 것들이다.
"가톨릭은 지금도 일종의 마술적 행위에 신앙의 토대를 두고 있다. 이런 믿음이 있는 한 교회가 갈릴레오를 '용서'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322쪽) 저자의 서술은 이 책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밝히고 있는 셈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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