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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50> '챔버뮤직스쿨' 다니는 손광덕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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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50> '챔버뮤직스쿨' 다니는 손광덕 군

입력
2009.04.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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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던 손광덕(15ㆍ경기 고양시 가람중 3년)군은 동갑내기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심장이 '쿵쿵' 요동치는 경험을 했다.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잠자던 손군의 영혼을 깨웠던 것일까.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곱 살 무렵 잠깐 피아노 학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가정 형편 탓에 금세 그만 뒀고 그 이후로도 피아노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 근무하던 아버지는 IMF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었다. 더구나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어머니 정재화(49)씨가 경기 고양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기는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번 신용불량자의 멍에를 쓰게 되자 다시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도와 학원 일을 했다. 정씨는 "당시 학원 간 경쟁이 너무 심해 두 사람이 일해도 한 사람 월급을 벌기 힘들었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는 2002년 학원을 정리하고 집집마다 돌며 책을 판매하는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나섰다. 아버지는 고양시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 식당을 시작했지만, 경험 부족 탓에 1년 남짓 고생만 하다가 문을 닫았다.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어머니는 출판사에 이어 보험사 영업사원으로 나섰지만, 종일 발품을 팔아도 한 달에 50만원 벌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손군에게 피아노 연주는 사치스러운 꿈일 뿐이었다.

손군은 한때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아버지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일이 없어 집에 머무는 아버지와 의견 충돌도 잦았다.

그래도 손군은 겉돌거나 비뚤어지지 않고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정 형편이 좋은 아이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가난을 원망하지는 않아요. 이변이 없는 한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가난에 좌절하지 않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부단히 찾았다.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피아노 소리를 포기할 수 없어 교회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교사를 졸랐다. 하지만 손군은 수강료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간절해 어린 마음에 당돌한 제안을 했다. 교회 청소를 도맡아 할 테니 무료 레슨을 받게 해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교회 음악교사는 손군의 제안과 열성에 감탄해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교회에서 피아노 레슨이 시작됐다. 물론 집에 피아노가 없다 보니 밤늦게까지 교회에 남아 연습을 해야 했다.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피아노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던 손군은 실력이 부쩍 늘었다. 남들이 1년 넘게 배우는 과정을 몇 달 만에 끝내자 음악교사는 손군에게 대회 참가를 권유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나간 고양시 연주대회에서 그는 당당히 금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나자 더욱 욕심이 났다. 하지만 교회에서 하는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손군은 어머니와 함께 교회 목사를 찾아가 여러 대의 피아노 가운데 한 대만 달라고 부탁했다.

목사의 흔쾌한 허락으로 낡고 오래돼 색이 바래긴 했지만, 피아노를 한 대 장만해 집에서 마음껏 연습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면서도 공부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아 현재 다니는 중학교에서 전교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손군이 처한 환경과 낡은 피아노로는 우물 안 개구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 손군에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꿈을 키워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모 기업이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해피 뮤직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돼 오디션을 봤다.

심사위원들은 손군이 교회 청소를 해주며 피아노를 배웠다는 얘기와 그의 연주를 듣고 감동했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명지전문대 김지현 교수(성악 전공)는 "손군의 연주를 듣고 재능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너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때 받은 강렬한 인상 때문에 손군에게 올해 3월 LG그룹이 미국 링컨센터와 손잡고 저소득층 청소년의 음악교육을 후원하는 'LG 링컨센터 챔버뮤직스쿨' 모집 사실을 알려줬다.

수백 명의 지원자 가운데 20명을 뽑았고, 그 중 피아노 전공은 단 4명이었다. 그런데 손군은 힘든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손군은 요즘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정동 예원학교로 달려가 교습을 받는다. 그런데 그간 배웠던 레슨과는 차원이 달랐다. 국내의 음악 교육은 악기별로 이뤄지는 단독 교육이지만, 챔버뮤직스쿨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 여러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실내악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이 독특해 새로운 세계에 온 느낌이었어요. 다른 악기들과 어울려 연주하면서 음악이 얼마나 조화로운 예술인지 이해하게 됐어요." 올해 여름에는 미국 줄리어드 음대 교수들이 한국을 방문해 교습을 진행할 예정이어서 손군에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요즘 손군에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 이외에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자신처럼 가난 때문에 음악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음악 교육을 받고 싶은데 돈이 없어 못 받는 것은 너무 불공평해요. 제가 그 동안 받았던 배려와 사랑을 가슴에 꼭 간직했다가 그런 친구들에게 음악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어요."

● LG 링컨센터 챔버뮤직스쿨에선…

LG그룹이 미국 링컨센터와 손잡고 올해 3월부터 시작한 'LG 링컨센터 챔버뮤직스쿨'은 가정 형편 탓에 음악 교육을 받기 힘든 저소득층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실시한다.

LG그룹은 앞으로 2년 동안 음악 영재들에게 링컨센터와 국내 교수진이 공동 개발한 최고 수준의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실내악 교육을 지원할 계획이다.

LG그룹 관계자는 "음악 교육은 여유 있는 가정에서만 할 수 있다는 편견을 깨트리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며 "기업이 앞장서 배움의 기회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국내에서는 받기 힘든 실내악 중심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간 국내 음악 교육은 학교와 학원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특정 악기에 국한한 1인 교육 위주로 진행됐다.

그러나 서양의 전통적인 음악교육은 악기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실내악 중심이다. 다른 악기와의 조화를 통해 음악을 폭 넓게 이해하고, 독주 뿐만 아니라 협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일찍부터 키워주는 것이다.

LG 링컨센터 챔버뮤직스쿨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춰 국내에서는 드물게 실내악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이대욱 한양대 음대 교수와 미국 링컨센터 챔버뮤직 소사이어티의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핀켈과 우 한 등이 음악 감독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 재학 중인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개 선발 과정을 거쳐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4개 부문에서 20명의 음악 영재를 뽑았다. 이들은 3월에 서울 정동 예원학교에서 입학식을 가졌다.

선발 학생들은 매주 한 번씩 이대욱(피아노), 조영창(첼로), 조영미(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등 국내 유수의 교수진에게서 개인 교습 및 실내악 협연 교육을 받는다. 또 연간 2회의 음악회와 다양한 연주 기회를 갖게 되며, 여름방학 기간에는 세계적 음악가인 미국 링컨센터 교수진에게서 집중 교육을 받는다.

LG그룹 관계자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이 미국 링컨센터 교수진에게 발탁돼 줄리어드 음대 등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링컨센터 교수진이 방학 때 직접 방한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명문 음대 진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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