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습을 꼭 직접 뵙고 싶어서 새벽 일찍 왔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왔다는 조문객의 얼굴에는 경건한 빛마저 감돈다. 지난 2월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에는 40만 명이 조문을 했다.
명동성당으로부터 명동역까지 2km 이상 길게 이어졌던 조문 행렬은 연일 신문의 첫 면을 장식했다. 모처럼 사람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자신을 낮추면서 사랑을 실천했던 김 추기경의 떠나심을 아쉬워했다.
어눌한 말투의 김 추기경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는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상승'(elevation) 상태의 경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남에게 친절을 베풀 때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상승 상태, 즉 감정이 감격스럽게 고양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들은 김 추기경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느끼면서 상승 상태를 경험하고 싶어서 장시간 줄을 섰던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람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타인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의 경향성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심지어 남을 돕는 경험을 통하여 시간이 멈추듯 자신마저 잊게 되는 '몰입'(flow)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미시건 대학의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 같은 행복감은 우리의 '주의'(attention)를 확장시키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기분이 좋을 때 좋은 일도 더욱 잘하는 현상'(Feel-Good, Do-Good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리더십 전문가로서 <닻을 올리기 전에> 란 책을 쓴 김준봉 전 광운대 교수도 "착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닻을>
많은 사람들이 선뜻 선행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남을 제대로 도우려면 나의 행복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굳이 희생할 필요는 없다. 우선 내가 행복해질수록 다른 사람을 잘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드 대학의 인기 강좌인 행복 과목을 강의하는 탈 벤 샤하르 박사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행복을 희생하며 사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행복은 뒷전에 두고 다른 사람의 행복부터 챙긴다는 것은 억지이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야 남을 잘 도울 수 있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어떤가. 과연 우리 아이들이 자신은 물론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을까. 요즘 우리 교육은 남을 챙기는 사람으로 키우기는커녕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꼭 이겨야만 한다" 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전 세계 수십 개 국가의 15세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조사 결과에 따라 작성되는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 학생들의 협동에 대한 선호도는 헝가리를 제외하고는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쟁에 익숙한 우리나라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협력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과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서글픈 결과를 갖고 온다. 늘 승자보다는 패자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독한 후유증을 남긴다. 승자는 남을 이기고 올라서는 쾌감을 맛보며, 서서히 경쟁에 중독된다.
이전에는 과제 자체에 흥미를 가졌던 학생들도 경쟁의 쾌감을 맛보면 과제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경쟁적 상황이 아니면 모든 것이 시들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경쟁에서 지는 학생들은 무기력감을 맛보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일단 자신감이 떨어지면 이후의 학업 성취도도 낮아진다.
로체스터 대학의 앤드류 엘리엇에 따르면 경쟁적 상황에서 학생들은 학습에 대한 흥미를 덜 갖게 되고, 기계적 암기를 하며, 높은 수준의 사고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경쟁적 상황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능력을 주변에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극도로 실패를 두려워한다. 이런 학생들은 쉬운 과제를 통해 능력을 입증하는데 급급해지고, 도전적인 과제를 회피한다.
경쟁 시대에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 것이 좋을까. 경쟁을 줄여보겠다고 섣불리 학생들에게 성취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 것은 비효과적이다. 실제로 1990년대 경쟁을 줄여보겠다고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아예 폐지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학부모들은 자녀의 학업 성취도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자신의 성취에 대해 수시로 피드백을 받아야 발전하고,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과제를 선택해야 효과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
경쟁을 회피한다고 학업 평가를 생략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남과의 경쟁보다는 '나 자신珦?경쟁'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는 것이 바람직하다. 잘하는 일을 찾아서 자신의 약한 마음, 겁먹는 마음, 나태한 마음과 싸워서 이기려는 노력을 하게 해야 한다.
또 나와의 경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과 협력할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아이들이 경쟁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극복해 도리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다.
긍정 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은 삶의 행복은 '즐거운 삶', '만족스러운 삶', '의미 있는 삶'으로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의미 있는 삶이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쁨을 준다.
한 잔의 포도주는 잠깐 동안의 즐거움을 주고, 일이나 취미는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만족을 준다. 의미 있는 삶은 다른 사람을 돕는 등의 보다 큰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은 오랫동안 매우 높은 수준의 만족을 준다. 의미 있는 삶은 주변 사람들도 감화시키면서 상승 효과를 가져온다.
자신의 인생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영감(inspiration)을 주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며,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아이들이 남과의 편협한 경쟁에서 벗어나, 타인에게 감화를 주면서 살 수 있도록 키울 때다. 행복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 남을 도와서 더욱 행복해지는 사람으로 키울 때다.
■ 행복한 아이 만들기 비법
우리 자녀들이 경쟁을 넘어서서 자신의 일을 즐기는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칭찬 전략'을 잘 써야 한다.
1. 적극적으로, 아낌 없이 칭찬한다.
일단 잘한 일에 대해서는 아낌없이 칭찬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부모들은 칭찬에 인색하지만 실수에 대해선 질책을 자주하는 편이다. 야단을 맞으며 자라난 아이는 자신감을 잃고 어려운 일을 피하려고 한다. 적극적으로 칭찬함으로써 긍정적 교육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녀가 한 일을 인용하면서 칭찬한다.
아이들을 칭찬할 때 이전에 아이들 자신이 잘한 일을 언급하는 게 효과적이다. 자칫 부모들은 다른 아이들이 잘한 일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아이들이 한 일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성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비효과적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남과 비교 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3.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칭찬한다.
부모들은 칭찬을 많이 하면 자칫 아이의 버릇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칭찬을 하더라도 약하게 잘했다고 하거나 "이번엔 잘했어, 다음에도 잘해라" 하는 식으로 애매하게 칭찬한다. 그러나 일단 칭찬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잘 했는지 명확하게 밝히는 게 좋다. 특히 어려운 과제를 잘 풀어냈을 때는 어느 부분을 어떻게 잘했는지를 밝히면서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4. 노력과 과정에 대하여 칭찬한다.
자신의 노력, 과정에 대해 칭찬을 들은 아이들은 앞으로도 노력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노력은 가장 안정적이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반면 결과와 능력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노력보다는 능력, 과정보다는 결과를 강조하면서 칭찬하면 아이들이 자칫 포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5. 아무 때나 칭찬하지 말고, 잘했을 때 제대로 칭찬한다.
아이들을 격려하면서 긍정적 교육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정말로 칭찬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그래 수고했구나, 잘했다" 하는 식으로 대충 칭찬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가 칭찬을 들을 만한 상황에서만 칭찬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 칭찬을 너무 자주하다 보니 칭찬이 더 이상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칭찬을 남발하지는 말고, 아이가 좋을 일을 했을 때 제대로 칭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김은주 연세대 교수(교육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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