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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탄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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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연탄가스

입력
2009.04.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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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상의 국민치고 연탄과 관련된 추억 하나 없는 이는 드물다. 연탄에는 팍팍하고 고달팠던 시절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울컥 목이 메기도,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연탄은 달동네 단칸방을 온기로 덥혀 주었고, 포장마차 화덕 위에서 익어가는 닭똥집과 함께 서민들의 삶의 고단함을 날려 버리기도 했다. 방과후 교문 앞에서 아이들이 호떡이며 붕어빵이며 번데기를 사먹고, 온갖 모양의 '뽑기'에 성공해 '보너스 뽑기'의 혜택까지 누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불량식품 제조기' 연탄 덕분이었다.

▦인류가 기원전부터 사용해온 석탄이 전 세계로 퍼진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52년 연탄이 보급되면서 석탄이 가정용 연료로 각광 받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난방ㆍ취사 연료로 장작 땔감 등을 사용했는데, 연탄 사용은 민둥산 확산 방지에 도움을 줬다. 60~70년대 연탄은 쌀과 함께 정부가 직접 가격을 관리ㆍ통제하는 생활필수품이었다. 88년 서울올림픽 직전에는 한 해 67억 3,000만장의 연탄이 생산됐다. 올림픽 이후 에너지 정책이 '주탄종유'(主炭從油)에서 주유종탄으로 바뀌면서 연탄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연탄 사용 증가는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했다. 연탄이 배출하는 일산화탄소는 주로 구들장 틈을 노렸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연탄가스로 일가족 사망'과 같은 기사가 신문 사회면을 자주 장식했다. 한 해 동안 무려 100만명이 연탄가스 중독 피해를 입었고, 3,000여명이 사망한 적도 있었다. 오죽하면 언론이 연탄가스를 '겨울 사신(死神)''검은 사신'이라고 불렀을까. 서울시가 1,000만원을 내걸고 연탄가스 제독(除毒) 방법을 공모하기도 했고, 동치미 국물이 제독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치미는 각 가정의 필수 비치 식품이 됐다.

▦연탄에는 가난과 역경을 극복한 한국인의 강한 정신이 배어 있다. 새벽마다 연탄을 갈고 부엌에서 일하느라 만성두통을 앓던 어머니, 일당으로 연탄과 쌀을 사고 나머지는 저축했던 아버지, 밤새 연탄가스 마시며 안주를 굽던 선술집 주인 부부, 일 나간 부모 대신 연탄 화덕에서 밥을 해 동생들을 먹이던 누나…. 현실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들은 현실에 좌절하진 않았다. 인터넷에서 연탄가스 동반자살을 논의하는 이들이 있다면, '살인가스'와 함께 생활한 그 분들의 삶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연탄은 지금도 도시빈민,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에겐 살아가는 이유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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