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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넛지' 이제 세상은 부드러움이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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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넛지' 이제 세상은 부드러움이 지배한다

입력
2009.04.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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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선스타인 등 지음ㆍ안진환 옮김/리더스북 발행ㆍ428쪽ㆍ1만5,500원

"텍사스를 더럽히지 마(Don't mess with Texas)!" 고속도로에 무심코 버려지는 쓰레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텍사스주가 TV에 내보낸 공익광고 카피다. 인기 풋볼팀 선수들이 쓰레기를 줍다 맥주캔을 찌그러트리며 으르릉대던 화면이었다. 엽기적이기까지 한 이 표현은 그러나 2006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표어로 선정, 뉴욕 도심을 행진하기에 이르렀다. 실제 1년 만에 텍사스주의 쓰레기는 29% 줄더니, 6년 후에는 72%까지 감소했던 것이다(100쪽).

이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강제도, 강압도 아니다. 비밀은 창의적인 넛지(nudge)에 있다.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에서 나와 '타인의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는 의미로 통하는 말이다. 이것을 두고 <넛지> 의 저자들은 자유주의적 개입 혹은 간섭이라고 규정한다.

넛지는 어떤 선택을 금지한다거나 경제적 조건들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부드럽지만, 그 힘은 강력하다. 인간의 행동 양식을 현격하게 변화시키는 모든 요소를 아우른다. 이 책의 표현에 의하면 "인간은 넛지 당하고 있는"(69쪽)는 것이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고도 경이적인 작품 '교향곡 9번'을 작곡했다. 그러나 그는 집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몰라 애를 먹었던 사람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그토록 똑똑한 동시에 그토록 멍청할 수 있을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합리한 동물이다. 소변기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더니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일 수 있었다. 이처럼 인간의 비논리성에 주목, 실질적 행동을 유도해 내는 사람들을 가리켜 이 책의 저자는 '선택 설계자'라고 부른다. 넛지란 그런 자들이 사용하는 '부드러운 힘'이다.

우리 시대 초미의 관심사가 된 환경 문제, 특히 지구 온난화의 해결이라는 심각한 문제에서도 '온화한' 넛지는 탁월한 비법을 창출할 수 있다. 1990년 미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형태의 경제적 인세티브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대기오염 방지법(Clean Air Act)'의 수정조항이 좋은 예다. 대기오염을 줄이면 그만큼을 배출권을 거래하는 등 현금으로 환불받을 수 있게 해, 결국 산성비를 규제하는 데 강력한 효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넛지는 아들 부시 대통령의 경직된 팽창주의에 넌더리 난 미국의 새로운 선택으로도 떠오르고 있다. 또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일가족 살해 후 자살하는 가장들이 속출하고 있는 미국을 떠안게 된 오바마 행정부에게 주어진 일말의 희망이기도 하다.

넛지는 또한 붕괴 수준에 이른 전통 혼인 제도에 대한 현실적 구제책이 될 수도 있다. 요체는 결혼의 완전 민영화다. 기존의 결혼을 폐지하고, 대신 '시민 결합'이라는 차원에서 광범위한 실험이 허용돼야 한다는, 미국적인 제안(329쪽)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캐스 선스타인은 현재 오바마 정부의 규제정보국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공저자인 리처드 탈러는 넛지를 주제로 한 행동경제학을 정치ㆍ경제학계에 유포한 주인공이다. 탈러의 이론에 기반한 저축 플랜은 빚더미에 앉은 미국을 구할 수 있는 처방으로 각광받았다.

한 가지, 저자는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는 넛지가 자칫 부패 공무원들에게 매력적 옵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잊지 않는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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