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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 직장여성들 이눈치 저눈치 '유산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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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 직장여성들 이눈치 저눈치 '유산 공포'

입력
2009.04.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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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 김모(35)씨는 임신 7주째다. 지난해 12월 첫 임신 7주 만에 유산한 뒤 어렵게 다시 가진 아이다. "임신 초기 과로를 절대 피하라"는 당부가 쏟아졌지만, 그는 기간제 교사 채용에 난색을 보이는 학교측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심한 입덧에 감기까지 겹치자 불안한 마음에 병가를 내려 했으나, 담당의사는 "뚜렷한 증세가 없다"며 진단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최근 초음파 검진 결과, 자궁에 피가 고여 있는 게 발견됐다.

대표적 유산 위험 징후인 질출혈이었다. '2주간 절대 안정' 진단을 받은 김씨는 "또 다시 유산 위기에 내몰린 내 처지가 서글프다"고 했다.

임신 초기의 직장 여성들이 유산의 불안에 떨고 있다. 자연유산의 80% 이상이 임신 초기인 12주 이내에 발생하는데도 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결혼 연령이 점차 높아지면서 유산 위험에 취약한 30대 중반 이상의 고령 임신부가 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임신 초기 과중한 노동은 유산율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이 의학계 정설이다. 최규연 순천향대 교수는 "오래 서 있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몸을 굽히는 동작을 반복하면 에너지 소모와 자궁 수축을 유발해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정신적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호르몬 역시 유산 위험을 높인다"고 말했다.

고령 임신부는 더욱 위험하다. 한양대 한동운 교수팀이 2001~2005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최근 내놓은 '자연유산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출산 적령기인 25~29세의 유산율은 3~4%대인데 반해, 30~34세는 4~5%, 35~39세 10~13%, 40~44세 27~31%로 치솟는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임산부 보호 휴가는 출산휴가 90일과 임신 16주 이후의 유산ㆍ사산에 대한 최장 90일 휴가가 전부다. 유산 위험이 높은 임신부는커녕 실제 유산 환자 대부분에 대한 법정휴가도 보장돼 있지 않은 셈이다.

유산 위험이 있어 직장을 쉬려면 병가나 연차 휴가를 내는 편법을 쓰거나 무급휴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게 현실이다. 사업장 대부분은 2~4주의 병가만 보장하며, 관련 규정이 없는 곳도 상당하다. 사업주도 휴가를 내주는 데 인색하다.

휴가 신청이 실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병원 사무원 이모(28)씨는 이달 입덧이 심해져 나흘 휴가를 냈다가 "병가 대상이 아닌데 결근했다"며 해고 통보를 받았다. 임신 13주차에 근무 중 하혈해 입원한 어린이집 교사 최모(33)씨는 이미 유산 조짐이 있어 2주를 쉬었는데 또 병가를 줄 수 없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황현숙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유산 관련 휴가로 인한 해고 상담이 매달 한두 건씩 들어온다"면서 "고용불안 때문에 유산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여성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서 떼기도 쉽지 않다. 최근 들어 단속 강화를 이유로 병원들이 발급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산부인과 관계자는 "예전엔 유산 경험이 있거나 허약한 임신부들이 요청할 땐 의사 재량으로 한달 이상 진단서를 떼주는 곳도 있었지만, 요즘은 질출혈, 복통 등 뚜렷한 증상이 있을 때만 2주 이하 진단서를 발급하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여성계와 의료계 일각에선 임신 초기 여성의 모성 보호를 위해 '유산 예방 휴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산이 거듭되면 습관성 유산으로 진행돼 불임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라도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현숙 회장은 "유산이 대부분 임신 3개월 안에 일어나는 만큼 유산 예방 휴가를 유급으로 쓸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문일 한양대 교수는 "유산의 잠재적 위험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진단서가 아니라 임신 확인서만으로 휴가가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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