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표지판 속 픽토그램을 연상시키는 둥근 머리와 뚜렷하고 단순한 선, 그리고 천연색의 컬러. 영국 출신의 세계적 팝아트 작가 줄리안 오피(51)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오피는 앤디 워홀 이후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영국의 테이트모던,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오피의 국내 첫 개인전이 29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다. 그간 그룹전이나 아트페어 등을 통해 국내에도 그의 작품이 여러 번 소개됐지만 작가가 직접 진행하는 공식적인 개인전은 처음이다.
국제갤러리는 지난해 오피와 전속 계약을 맺고 이번 전시를 준비해왔다. 경제불황으로 해외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대부분 취소, 혹은 연기된 상황에서 주목되는 전시다.
오피는 자신이 사진으로 촬영한 모델을 드로잉이나 컴퓨터 작업을 통해 변형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얼굴과 몸의 신체적 특징이 최소한으로 남을 때까지 형태를 단순화시킨 뒤 이를 조각, 동영상, 프린팅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만든다.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배출한 영국 골드스미스대학 출신인 오피는 1980년대까지 주로 미니멀한 입체작품이나 풍경화를 선보이다 90년대 들어 단순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98년부터는 교사, 학생, 주부 등 주변 인물들을 작품화했다. 특정 인물들은 구체적 형태를 지워나가는 오피의 독특한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인의 익명성을 나타내는 인물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쾌하고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오피 작품의 매력이다.
그는 대중적인 작업을 자주 한다. 2000년 만든 영국 팝그룹 '블러'의 베스트앨범 재킷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캘린더, 버스 광고, 잡지, 쇼윈도, 공항 환승통로 등 곳곳에서 그가 만든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그는 스틸 이미지뿐 아니라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인터넷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그의 홈페이지에 가면 스크린세이버를 다운받을 수 있게 돼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신작 30점을 모았다. 작품 형태도 평면, 조각, 동영상 등으로 다양하다. LCD 동영상 작품인 2008년 작 '레이스 블라우스를 입은 클레어'는 마치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를 연상시키지만, 특유의 단순화된 이미지로 표현됐다. 비닐 프린트 초상화 '잭'의 경우 뒤에서 라이트를 비춰 회화적 효과를 거둔다.
전시장 야외정원에는 석판에 LED를 더한 설치작을 놓았다. 그 속에서는 반짝이 드레스를 입은 둥근 머리의 여성이 춤을 추는 동영상이 반복된다. '일찍 퇴근하는 켄'과 '거실의 카테리나' 등은 미술과 만화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 처음 소개되는 그의 새로운 작품유형이다.
국제갤러리는 "줄리안 오피는 회화와 조각, 원본과 복제, 미술과 디자인, 상품과 예술, 심미성과 일상성 등 서로 대립되는 관념들을 동시에 다룬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공감을 불러일키는 특별한 작가"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오피의 최근 예술세계를 폭넓게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5월 31일까지. (02) 733-8449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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