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앙정보국(CIA)의 테러용의자에 대한 '가혹한 신문'은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딕 체니 부통령 등 조지 W 부시 정부 핵심 수뇌부들이 직접 승인하고 이를 토대로 당시 법무부가 법적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부시 정부 수뇌부들은 2002년 5월부터 수 차례 조지 테닛 당시 국장 등 CIA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물고문(워터보딩)'을 포함한 '대체 신문기법'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으며, "CIA 신문 프로그램은 적법하며, 행정부의 정책을 반영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언급했다.
테닛 국장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인사는 두 사람을 포함해 존 애쉬크로프트 법무장관, 알베르토 곤잘레스 백악관 법률고문, 존 벨링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법률자문관 등 모두 5명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 상원정보위원회의 요구로 공개한 일지를 인용, 22일 이같이 보도했다.
일지에 따르면 라이스 보좌관은 두 달 뒤인 7월 테닛 국장에게 "CIA가 제안한 신문을 계속 진행하라"고 하는 등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문을 인가한 당시 법무부 관리들의 기소 가능성을 내비친 상황에서, 고문이 부시 정부 수뇌부들의 승인하에 이뤄진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법적 책임론이 어느 선까지 확산될 지 주목된다.
일지는 2004년 초 CIA가 미국 정부가 서명한 유엔 고문방지협약(CAT)에 의거해 이런 신문 방식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보고서를 제출하자 애쉬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워터보딩'을 제외한 나머지 신문은 "합법적"이라는 해석을 서면으로 전달했고, 한달 뒤에는 "워터보딩도 안전장치가 돼 있다면 합법적"이라는 법무부 해석을 재차 내놓았다.
하지만 라이스 장관은 그간 이런 행적을 부인해왔다. 라이스 장관은 2005년 유럽 순방 당시 가혹 신문 논란이 일자 "미 정부는 수감자 고문을 승인하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며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비열한 대우를 금지하는 국제협약을 일관되게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상원 군사위에서는 CIA 신문 관련 회의에 참석만 했을 뿐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민주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초당적 위원회 구성을 통한 조사' 언급에도 불구, '진실위원회'와 같은 독자적인 위원회나 청문회 등을 통해 진상을 가린다는 방침이다. 반면 공화당은 고문 조사는 부시 정부를 "사악한 것"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라며 초당적 위원회 구성에 반대하고 있다. 홀더 법무장관은 23일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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